“우리 바다에서 귀신고래를 발견해 제보해 주시면 포상금 최대 1,000만 원을 드립니다.”
고래류 가운데 유일하게 우리 영명이 붙은 한국계 귀신고래(Korean Gray Whale)는 바위처럼 머리를 세우고 있다가 누군가 다가가면 귀신같이 사라진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과거 참고래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고래였으나, 1977년 1월 3일 울산 방어진 앞바다에서 목격된 2마리를 끝으로 종적을 감췄다. 학계도 멸종한 것으로 간주했다. 그러던 중 2000년대 초 미국과 러시아가 벌인 사할린 연안 합동조사에서 한국계 귀신고래 100여 마리가 포착됐다. 전문가들은 회유 경로상 한반도 동해안을 지날 것으로 예상했다. 국내 유일 고래 전문 연구기관인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도 2004년부터 추적에 나섰다. 생사 여부에 관계없이 귀신고래를 신고하면 1,000만 원, 직접 촬영한 사진‧동영상을 제공하면 500만 원 포상금도 내걸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포상금을 타간 이는 없었다. 울산 남구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에서 만난 박겸준(50) 해양수산연구관은 “2011년 일본에서 한국계 귀신고래가 그물에 걸려 죽은 채 발견된 적도 있다”면서 “포상금 지급 기간은 끝났지만 발견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자신했다.
박 연구관은 국내 최초 고래를 주제로 석·박사 학위를 모두 받은 자타공인 ‘고래 전문가’다. 한국 토종 돌고래 상괭이 개체수가 2005년 3만6,000마리에서 2011년 1만3,000마리로 급감한 사실을 밝혀내 2016년 보호대상해양생물 지정을 이끌어 낸 주역이기도 하다. 고래연구소는 2004년 부산 수산과학원 내 고래연구센터로 출발해 이듬해 연구소로 승격한 뒤 2006년 지금의 울산 장생포로 자리를 옮겼는데 박 연구관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연구소를 지키고 있다. 그는 “처음 울산에 왔을 땐 연구소 주변 99%가 고래 고기를 파는 식당이었고, 상업 포경을 재개하자는 여론도 많았다”며 “수족관에 고래 신규 반입을 금지한 지금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가 귀신고래 발견에 기대감을 내비치는 것 역시 바다에서 이 같은 변화를 체감하고 있어서다. 고래연구소는 1999년부터 매년 목시 조사(조사선, 항공기 등을 이용해 해상에서 고래류 관찰)를 진행하는데 지난해 동해에서 참고래 50여 마리, 향고래 100여 마리 이상이 분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두 고래 모두 국제적 멸종 위기종으로 국내에서 마지막으로 포획된 시기는 각각 1980년, 1973년이다. 박 연구관은 “전에는 발견이 안 되거나 발견되더라도 3, 4마리에 그쳐 수학적 추정이 어려웠다”며 “1985년 상업 포경 금지 후 40여 년이 지나면서 조금씩 고래 개체 수가 회복 중인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물론 낙관하긴 이르다. 현재 보고된 고래 개체 수는 전 세계적으로 130만 마리. 100년 전(500만 마리)의 4분의 1 수준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통상 고래 개체 수를 두 배 늘리는 데 30년 이상 소요된다고 본다. 고래 수명이 평균 90~100년이고, 2~3년에 한 마리씩 새끼를 낳는 걸 감안하면 원래 개체 수 회복까지 몇 세대는 걸린다. 박 연구관은 개체 수를 늘리는 것 못지않게 고래와 공존할 수 있는 해양환경 조성에 대한 중요성도 강조했다. 해양수산개발원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7년 사이 국내 연안에서 혼획된 고래는 12만 마리에 이른다. 박 연구관은 “포획은 금지됐지만 한 해 1,000마리 이상이 혼획돼 죽는다”며 “고래는 바다 생태계의 건강도를 알 수 있는 우산종(생물 보전을 위해 선정된 종)으로, 고래가 많은 바다는 건강하고 인간에도 유익한 만큼 보호에 동참해 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