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억 강남 로또 아파트

입력
2024.02.25 16: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27억 원을 벌 수 있는 로또 아파트에 전국이 들썩이고 있다. 서울 강남구 개포주공1단지를 재건축한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가 26일 중도 계약포기 물량 3가구에 대한 무순위 청약을 받는다. 청약 통장이 없어도 국내 거주 19세 이상 성인이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는 이른바 ‘줍줍’이다. 청약 신청금도 한 푼 필요 없다. 다주택자도 상관없다. 분양가는 전용 34㎡가 7억 원, 59㎡가 13억 원, 132㎡가 22억 원에 가깝다. 저층임을 감안해도 시세 대비 1억~27억 원 낮아 당첨만 되면 막대한 시세 차익을 거둘 수 있다.

□ 더구나 실거주 의무도, 전매 제한도 없다. 전세를 놓아 잔금을 치를 수(갭투자)도, 바로 팔 수도 있다. 분양가와 현 전세 시세의 차액(2억~8억 원)만 융통하면 된다. 다만 이 아파트는 강남구청으로부터 준공 승인을 받지 못했다. 소유권보전등기가 안 돼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없다. 전세 등기도 불가능하다. 세입자나 매수자를 구하는 게 힘들 수 있다. 6,702가구로 전세 물량이 많고 잔금일(6월 7일)이 짧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 관심이 있다면 청약홈 앱을 깔거나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들어가면 된다. 공인인증서나 금융인증서도 필요하다. 단 접속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다. 100만 명도 넘는 사상 최대 청약 경쟁률이 예상된다. ‘5억 로또’로 불렸던 지난해 6월 ‘흑석리버파크자이’ 2가구 청약엔 93만 명이 몰렸다.

□ 로또 1등 당첨 확률은 800만 분의 1이다. 최근 로또는 매주 1,100억 원 이상 팔리고 있다. 1인당 1만 원씩 산다고 보면 1,000만 명 이상 구입하는 셈이다. 그만큼 고단한 현실에서 도망가고 싶어 안 될 걸 알면서도 '만원의 행복'을 꿈꾸는 이들이 많다는 얘기다. 그래야만 일주일을 버틸 수 있다. 하물며 돈 한 푼 안 드는 강남 아파트 로또 기회라면 참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끊이지 않는 전세 사기와 나날이 오르는 분양가, 사상 최대 가계부채와 향후 공급 부족 등 산적한 부동산 문제가 이러한 대박 환상과 헛꿈에 가려지는 건 유감이다. 계약포기 물량을 단순 추첨으로 돌리는 게 정의인지도 의문이다. 한국 주택시장의 단면을 보여줄 청약에 ‘인생 한 방’을 기대하는 이들이 얼마나 몰릴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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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