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나는 자랑스러운 반체제 인사”… 바이든에겐 “당신은 해고!”

입력
2024.02.25 08:10
공화당 연례 행사 ‘CPAC’ 마지막 날 연설
국경 위기 비난에 바이든 캠프 “적반하장”

미국 공화당의 유력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자신을 ‘반체제 인사’로 규정하며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지난해 4건의 형사상 기소를 당한 건 조 바이든 행정부의 정치적 탄압이라는 주장을 반복한 것이다. 최근 수감 중 의문사한 러시아 반체제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와 자신의 유사성을 암시한 언급이기도 하다.

나발니처럼 탄압당하는 구세주?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미국 수도 워싱턴 교외 메릴랜드주(州) 옥슨힐 ‘게일로드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공화당 최대 연례 행사 ‘보수정치행동회의(CPAC·시팩)’ 마지막 날 연설자로 나섰다. 예정된 시간보다 한 시간가량 늦은 오후 2시 5분쯤, 미국 유명 컨트리 가수 리 그린우드가 부른 ‘신이시여 미국을 축복하소서(God Bless the USA)’와 함께 등장한 그는 “훌륭한 청중”이라며 “우리가 오랫동안 해 온 이 행사(시팩)가 갈수록 커지고 좋아지고 아름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21일부터 진행된 이 행사의 이전 연사들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을 보러 온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고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전했다.

자신에 대한 일련의 형사 기소(2020년 대선 결과 전복 시도 등 4개 사건, 총 91개 혐의)를 정치적 도구로 활용해 온 전략도 거듭 구사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도 “나는 오늘 여러분의 과거와 미래의 대통령으로서뿐 아니라 자랑스러운 정치적 반체제 인사로서 여러분 앞에 섰다”고 말했다. 본인의 법적 문제를 “스탈린주의 쇼 재판”으로 묘사하는 한편, 자신을 악명 높은 과거 마피아 두목 알 카포네와 비교하며 “내가 알 카포네보다 더 많이 기소됐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도 했다. 그는 유세 등을 통해 이미 여러 차례 자신을 알 카포네와 견줬다.

폴리티코는 “자기가 ‘여러분을 위해 기소되고 있다’며 자신의 법적 문제 해결을 위해 지지자들에게 정치자금을 모으곤 하는 전직 대통령이 시팩에서도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고 비꽜다.

이날 트럼프 전 대통령 발언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최대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저지른 짓일 수도 있다는 추측을 낳으며 공분을 사고 있는 나발니 의문사를 정치적으로 십분 활용하려는 의도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는 나발니가 급사하자 이후 사흘간 침묵하다가 지난 18일 소셜미디어에 자신이 나발니처럼 정치적으로 탄압받고 있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이에 바이든 대통령이 21일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모금 행사에서 해당 발언을 언급하며 “도대체 어디서 나온 얘기인지 모르겠다. 나를 경악하게 만들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이날 연설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11월 대선에서 자신과 재격돌할 공산이 큰 바이든 대통령을 겨냥한 발언들도 쏟아 냈다. 지지자들에게 그는 자신이 2020년 이미 경고하지 않았냐며 바이든 대통령의 재집권이 이민과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사법 제도 등에 무엇을 의미하게 될지 상상해 보라고 요구했다. 이어 “2024년 다시 바이든이 승리한다면 진짜 최악을 맞게 될 것”이라고 재차 경고한 뒤, 미국의 종말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자신이라고 주장했다. 스스로를 ‘구세주’에 빗댄 셈이다.

“그들이 우리 국민을 죽이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과거 미국 NBC방송 리얼리티 TV쇼 ‘어프렌티스’ 진행자였을 당시 자신이 만든 유명한 대사를 이용해 “바이든에게 ‘당신은 해고됐다! 당장 여기서 나가라’고 말할 시간이 됐다”며 공세를 퍼붓기도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국경 위기 비난은 이날도 거듭됐고, 곧바로 바이든 대통령 측의 반격을 당했다. 그는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 추방이 이뤄질 텐데,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며 “그들(불법 이민자들)이 우리 국민을 죽이고 있다”고 말했다. 남부 국경을 통한 불법 월경자 급증으로 동요한 여론을 자극하고 보수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해 극단적 표현이 담긴 반(反)이민 메시지를 발신한 것이다.

이에 바이든 대통령 선거 캠프는 곧장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X·옛 트위터)에 “국경 안보 강화를 위한 초당적 거래에 훼방을 놓은 트럼프가 민주당이 ‘열린 벽(open walls)’을 원한다고 주장한다”고 반박했다. 적반하장이라는 것이다. 최근 불법 월경 단속 등 국경 통제 강화 예산 투입 방안이 담긴 상원 여야 타협안의 입법이 공화당의 막판 반대로 좌초됐고, 국경 위기를 대선 때까지 끌고 가며 정부 공격 소재로 쓰려 작심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입김이 여기에 작용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날 행사에는 한때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경합했던 사업가 비벡 라마스와미, 대표적인 ‘친(親)트럼프’ 인사 JD 밴스 공화당 상원의원(오하이오) 등 부통령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정치인들도 참석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연설 말미에 이날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치러지고 있는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 프라이머리(예비선거)에 참여하라고 지지자들을 독려하기도 했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