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3년째에 접어들면서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슬픔도 깊어지고 있다. 지난 2년간 우크라이나 전쟁 과정에서 사망한 민간인은 1만582명(22일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 집계)에 달한다. 전사자 수는 공개되지 않고 있지만, 지난해 8월 기준 7만 명 정도가 숨졌다는 추정(미국 뉴욕타임스)이 나왔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슬픔에 잠식되기를 거부했다. 현재 우크라이나 영토 약 18%가 러시아 점령하에 있고, 그 땅에는 우크라이나인이 산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 있는 한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평화는 없다는 생각이 사회 전반에 깔려 있다. 이에 희생자를 애도하며 승리에 대한 의지를 다시 다지는 모습이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2년을 맞은 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곳곳에서는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수도 키이우 성 미카엘 대성당을 둘러싼 '추모의 벽'에는 특히 많은 인파가 몰렸다. 푸른색 벽에는 러시아와 싸우다 목숨을 잃은 우크라이나 군인들의 사진이 빼곡히 붙어 있었다.
여자친구와 추모의 벽을 찾은 세르히는 벽에 붙어 있는 전사자 얼굴과 이름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우리가 희생자들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서 왔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국기를 몸에 두르거나 손에 들고 추모의 벽을 찾은 이들도 많았다. 이날 키이우를 '깜짝 방문'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알렉산더르 더크로 벨기에 총리 등도 이곳에 헌화했다.
개전 직후 러시아가 점령해 민간인 피해가 컸던 키이우 외곽 도시 부차의 분위기는 유독 무거웠다. 러시아 점령 때 사망한 민간인 500여 명의 이름이 새겨진 '명예의 벽' 앞에서는 헌화식이 진행됐다. 아나톨리 마리아(21)는 "러시아군이 아빠를 죽였다"는 말을 마치기도 전 눈물을 보였다. 그는 "아빠를 위해 직접 빨간 장미가 든 꽃다발을 만들었다"며 "아빠는 없지만 엄마와 함께 부차에 남아 아빠를 그리며 살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시민들은 승리에 대한 의지도 다졌다. 우크라이나 우체국인 우크르포슈타의 한 지점 앞에서 만난 드미트로는 "전쟁 2년을 계기로 발행된 우표의 주제가 마음에 들어 사러 왔다"고 했다. '봄이 올 것'이라는 주제의 우표에는 러시아 미사일로 파괴된 집 마당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커플 모습 등이 담겨 있었다.
학생인 에마(15)는 "지난 2년간 용돈을 우크라이나 군대에 기부하고, 우크라이나 소식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열심히 공유했다"며 "학생이라 할 수 있는 게 얼마 없어서 아쉽지만 우크라이나를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을 계속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키이우에 있는 식당 유라시아 관계자는 "지금까지 약 725만 흐리우냐(약 2억5,200만 원)를 우크라이나 군대에 기부했다"고 말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이날 연설에서 "우리는 우리 삶의 가장 위대한 날에 승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올렉산드르 시르스키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은 성명을 통해 "빛은 언제나 어둠을 이긴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대규모 공세 없이 24일이 지나간 데 대한 안도감도 엿보였다. 우크라이나 조국기념물 인근 카페에서 일하는 남성은 "패트리엇 등 최첨단 무기가 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패트리엇은 미국의 지대공 미사일 방어 체계로, 지난해 4월 처음 인도됐다.
그래도 불안감이 더 커 보였다. 키이우 시민 이반(25)은 "오늘 괜찮다고 내일 괜찮은 건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22일 우크라이나 공군에 따르면 개전 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공격에 사용한 미사일만 8,000발이 넘는다.
이날 우크라이나는 우방국의 굳건한 지지도 재확인했다. 캐나다와 이탈리아는 각국 정상의 키이우 방문을 계기로 우크라이나와 양자 안보 협정을 각각 체결했다. 캐나다는 우크라이나 재정·국방에 30억 캐나다달러(약 2조9,000억 원)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도 "우크라이나가 자유로워질 때까지 EU가 확고히 지원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주요 7개국(G7) 의장국인 이탈리아의 멜로니 총리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자리한 가운데 화상 정상회의를 주재했다. G7 정상은 공동성명을 통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속적 지지를 강조하는 동시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관련 결의를 직접적으로 위반하는 러시아의 북한산 탄도 미사일 조달을 강력하게 규탄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2년의 전쟁'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국 모두에 단기간 내 회복 불가능할 정도의 피해를 안겼다는 점이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의 경우, 인구 5분의 1인 700만 명 이상이 빈곤에 빠졌다. 국가 재건에는 향후 10년간 4,860억 달러(약 647조 원)가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절대적 수치는 나쁘지 않다. 2022년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2.1%였으나, 지난해엔 오히려 3% 이상을 기록하는 등 별다른 상처를 입지 않았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계산 착오로 막대한 피해를 볼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CNN방송은 △시민 수십만 명의 해외 도피 △용병기업 바그너의 무장 반란에 따른 푸틴의 리더십 위기 △국제사회의 대러시아 제재 등을 들어 "러시아가 고립과 암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며 이같이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