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위해 비상하는 기러기 떼

입력
2024.02.2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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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서운 겨울바람이 잦아들고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봄이 찾아오면 주변에서 사라지는 것들이 많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겨울을 우리나라에서 보낸 철새들이다. 수백만 마리의 가창오리를 비롯해 천연기념물인 두루미, 고니 그리고 흔히 볼 수 있는 기러기가 대표적인 철새다. 이들이 곧 떠난다는 소식에 마지막 모습을 보러 경기 양평군 두물머리 인근 늪지를 찾았다.


이른 새벽 도착한 늪에는 안개만 자욱할 뿐 철새들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날이 밝아오고 안개가 조금 걷히면서 기러기들이 떼를 지어 비행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선두 주자의 구령에 맞춘 듯 울음소리와 함께 질서 정연하게 물 위로 내려앉았다. 기러기 떼 사이로 드문드문 날아오는 고니들의 비행도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물 위에 내려앉은 철새들은 조용히 휴식을 취하거나 물속으로 잠수해 수초로 배를 채우며 장거리 여행을 대비했다. 안개 속 평화로운 풍경을 만끽하는 순간 갑자기 물 위로 물보라가 일며 눈 깜짝할 사이에 새들이 일제히 비상했다. 하늘을 보니 사납게 생긴 매 한 마리가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위험을 느낀 철새들이 한참을 하늘에서 맴돌다 사냥에 실패한 매가 돌아가자 다시 물 위로 내려왔다.


생존과 번식을 위한 철새들의 행로는 우리의 인생길과 닮았다. 험난한 산과 넓은 바다를 넘어야 하며, 폭풍우와 포식자들의 위협에도 맞서야 한다. 우리도 자신만의 인생의 목표와 가족을 위해 끝없는 시련들을 극복해야 한다. 하지만 긴 여정에 휴식은 반드시 필요하다. 먼 길에 지친 기러기들이 안개 낀 호수에서 편안하게 물을 마시고 먹이를 찾듯, 우리도 더욱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선 가끔은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가져야 한다.




왕태석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