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전 서울 보라매병원 응급의료센터 보호자 대기실 앞. 바쁘게 발걸음을 옮기는 서모(57)씨의 눈빛에 불안함이 가득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질 듯, 눈시울 주변도 붉었다. 서씨의 아버지는 이날 오전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고 한다.
곧바로 119에 신고를 한 덕에 응급대원들이 빠르게 도착했지만 마음을 놓을 순 없었다. 응급대원이 인근 대형병원들에 '진료가 가능한지' 혹은 '입원이 가능한지'를 물었지만, 모든 병원에서 '전공의 파업으로 응급환자를 받을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그나마 2차병원인 보라매병원에서 '입원 불가'를 전제로 받아주겠다고 해 이송까지 성공했다. 하지만 다음이 문제다. 서씨는 "만약 심각한 병일 경우 (보라매병원에 입원을 못 하니) 입원할 병원부터 찾아야 하는데, 2차병원도 어렵다고 하니 너무 막막한 심정"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서울 '빅5(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서울성모) 병원' 등 상급종합병원에서 새 환자 진료·입원을 거부하면서, 의료대란의 여파는 2차병원(상급종합병원이 아닌 종합병원)으로 번지고 있다. 아직까지는 2차병원들이 힘겹게 감당하고는 있지만, 만약 상급종합병원에 남아 있는 전공의와 전임의까지 모두 일터를 떠날 경우 진료 부담이 가중돼 2차병원도 대혼란 상태를 면할 수 없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날 기준으로 전공의 파업이 나흘째로 접어들면서, 2차병원에 가중되는 부담은 갈수록 늘고 있다. 상급병원에서 입원·진료를 거부당한 환자들이 모조리 2차병원으로 몰려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날 오전 서울적십자병원에는 20명 이상의 대기자들이 진료 접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병원 환자 A씨는 "전날 서울대병원으로 간이식 수술이 가능한지 검사를 받으러 갔는데, 전공의 파업으로 검사를 받을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며 "다행히 여기에서 검사는 받을 수 있었지만 파업 여파가 체감돼 놀랐다"고 말했다. 한 달에 두 번 고혈압으로 진료를 받는다는 김모(60)씨도 "평소라면 대기자가 4, 5명에 머물렀을 텐데 오늘 20명이나 있었다"며 "고령자분들이 특히 많아진 것 같다"고 혀를 내둘렀다.
이대로라면 2차병원이 부담해야 할 의료 수요는 갈수록 커질 것이 확실해 보인다. 상급종합병원으로 가지 못한 입원·외래 환자가 증가하고, 2차병원 간호사·전문의 업무가 가중되면 불가피하게 진료 업무가 지연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적지 않은 2차병원이 전공의 수련병원에 해당해, 이 병원들 역시나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낸 상황이다.
서울의 한 2차병원 관계자는 "23일을 기준으로 보면 지난주보다 20건 정도 진료 요청이 늘어난 건 맞지만 여러 변수를 고려해야 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면서도 "파업이 길어지면 2차병원에서 치료할 수 없는 환자들까지 몰려들까 봐 걱정된다"고 우려를 표했다. 또 다른 2차병원 관계자 역시 "진료 요청 건수가 늘고 있는 추세인 건 맞다"며 "저희도 수련병원에 해당해 많은 전공의들이 파업을 한 상황이라, 증가하는 환자들에 대한 대비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2차병원 부담 가중과 함께 또 우려되는 것이 '펠로'로 불리는 전임의(전문의 자격을 딴 뒤 종합병원에서 세부분과를 배우는 의사)들의 움직임이다. 현재 전공의 공백을 메우고 있는 전임의까지 대형병원을 떠나면, 2차병원으로의 전원이 대폭 늘어 의료대란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 대한의사협회 등에 따르면, 일부 상급종합병원 전임의들도 이달 29일까지만 근무를 하고 더 이상 계약을 연장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20일에도 전국 82개 수련병원 임상강사·전임의들은 입장문을 통해 "의료 정책에 대한 진심 어린 제언이 묵살되고 국민을 위협하는 세력으로 매도되는 상황에서 의업을 이어갈 수 없다"며 집단행동을 예고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