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러시아가 짓밟았던 그곳... "부차·이르핀은 지금 치유 중입니다"

입력
2024.02.2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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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 2년, 비극과 모순]
대량 학살 '부차'·비극의 다리 '이르핀'
우크라이나 두 도시 느리지만 회복 중
"상처 여전하지만... 나아지고 있다"

편집자주

전쟁은 슬픔과 분노를 낳았다. 길어진 전쟁은 고민과 갈등으로 이어졌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2년, 우크라이나와 이웃국가의 삶과 변화를 들여다봤다.




'부차'와 '이르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던 2년 전을 되돌아볼 때 적지 않은 이들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외곽에 있는 이들 두 도시를 떠올린다.

부차는 벨라루스 국경을 넘어 우크라이나로 진입(2022년 2월 24일)한 러시아가 사흘 만에 점령을 선언한 도시다. 한 달 뒤 우크라이나가 영토를 수복했을 때 도시는 완전히 파괴됐고 수백 구의 시체가 거리와 집 앞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부차 옆 이르핀은 키이우로 탈출하기 위해 길을 나선 주민들이 이르핀강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이미 폭파돼 있는 것을 보고 망연자실해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 타전되며 전쟁의 상징이 됐다.

지난 18일(현지시간) 다시 찾은 부차와 이르핀은 아직 악몽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회복해내리라는 의지가 넘쳤다.

'집단학살의 도시' 부차

부차 중심부의 안드레이 페르보즈바니 성당에는 러시아군이 살해한 우크라이나인 116명이 임시로 묻혔던 무덤이 있었다. 이제 그곳에는 무덤 대신 러시아 점령 때 사망한 민간인 500여 명의 이름이 새겨진 '명예의 벽'이 들어섰다. '1929년생 머드리 미카일로 미카일로비치, 2018년생 코자크 티모피 올렉산드로비치….' '부차에 살았다는 것' 말고는 공통점이 없는 이들의 이름이 은색 명판 위에서 나란히 반짝였다.

그러나 명예의 벽이 완성된 것은 아니었다. 아직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시신, 러시아군에 납치돼 생사를 알 수 없는 이들을 위해 벽 곳곳을 비워뒀기 때문이다.

부차시청 앞 중심 거리에도 부차 출신 전사자 100여 명의 사진과 사연이 담긴 입간판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죽음이 가득한 공간이지만 부차 시민들은 살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부차 시민 잔나는 "점령 당시를 언급하는 건 여전히 힘든 일"이라며 "그래도 파괴된 집들이 새로 지어지고 수리되는 것처럼 우리도 악몽에서 조금씩 빠져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민 발레리는 "러시아가 쏜 발사체로 집이 손상됐지만 피해 보상을 위한 국가 지원금을 신청하지 않았다"며 "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지원을 받기를 바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천천히 회복 중"이라고도 덧붙였다.


'절망의 도시' 이르핀

키이우와 연결되는 이르핀 다리가 있던 곳에는 지난해 11월 새로운 다리가 개통됐다. 폭격으로 무너진 다리보다 널찍하고 튼튼하다. 다만 그 옆에는 2년 전 파괴된 다리가 그대로 남아 그날을 생생히 상기시키고 있었다. 절단된 채 물에 처박힌 다리, 다리가 무너지며 함께 추락한 차량 등이 어지러이 뒤엉킨 이 공간에는 향후 기념관이 들어설 것이라고 한다.

전쟁 전 '이르핀에서 가장 크고 좋은 학교'로 여겨졌지만 전쟁 후 '가장 많이 파괴된 학교'가 된 '이르핀 3번 학교'도 이제 완전히 새 단장을 했다. 전쟁 발발 직후인 2022년 6월 이곳을 처음 찾았을 때 보였던 러시아 포탄과 총탄으로 파괴된 흔적은 온데간데없었다. 꾹 닫혀 있던 문도 이제는 활짝 열려 있었다.

학교는 전쟁 전과 마찬가지로 약 2,000명의 학생을 받고 있다. 아들 2명이 3번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옥사나는 "전쟁 때문에 온·오프라인 수업을 병행하고 있기는 하지만 학교가 열려서 좋다"면서도 "학생 수에 비해 방공 시설이 좁아 걱정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집단학살'과 '절망'의 도시, 부차와 이르핀은 전쟁 2년 사이 느리지만 회복의 도시로 거듭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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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차·이르핀(우크라이나)= 신은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