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증시 대표 지수인 닛케이255평균주가(닛케이지수)가 22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1989년 이후 34년 만의 기록이다.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30년’ 동안 지속된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에서 탈출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이날 닛케이지수는 전날보다 2%(836엔) 상승한 3만9,098엔으로 마감, ‘버블 경제’ 시기인 1989년 12월 기록한 역대 최고치(3만8,957엔)를 34년 2개월 만에 돌파했다.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가 간밤 시장의 예상을 훌쩍 웃도는 실적을 내놓은 것을 계기로 일본 내 반도체 장비 업체 주가 등이 강세를 보이며 상승세로 시작, 오전 중 마의 3만9,000 선을 뚫었다.
닛케이지수는 올 들어 16%나 상승하는 등 지속적 강세를 보였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올해 안에 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기술주를 중심으로 상승세를 이어가는 뉴욕 증시와 동반 상승하는 흐름이었다. 특히 경기 둔화세가 길어지는 중국에서 이탈한 국제자금이 독자적인 상승 요인이 있는 일본 시장으로 몰려든 것도 강세장 이유 중 하나였다.
상승세를 이끄는 것은 엔화 약세로 이익이 크게 늘어난 자동차 등 수출 기업이다. 도요타자동차의 2023회계연도(2023년 4월~2024년 3월) 연결순이익 전망은 전기 대비 84%나 급증한 4조5,000억 엔(약 39조 원)에 달한다. 일본 기업 실적 개선이 주가 상승으로 이어진 것이다.
일본 경제의 디플레이션 탈출 기대감도 상승 요인 중 하나다. 일본의 소비자물가는 10년에 가까운 금융 완화 조치에도 불구하고 상승률이 0~1%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코로나19 대유행 말기인 2022년부터 상승세가 뚜렷해져 현재까지 3% 내외 상승률이 지속되고 있다. 30년 동안 그대로였던 임금도 오르기 시작했다. 지난해 임금인상률은 3.6%로, 3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해는 5%대 인상이 기대된다.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는 상황이 주가에 반영되고 있는 셈이다.
2013년 기업지배구조 개혁이 시작된 지 10년이 지나면서 일본 기업의 자본효율성이 전보다 개선되고 주주 환원이 활발해진 것도 일본 주식 재평가에 기여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2013년 4~6% 수준이던 일본 기업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은 2018년 8~9% 정도로 상승했다. 2023년 3월 배당금 총액은 9년 전보다 2.5배 증가한 18.5조 엔, 자사주 매입은 2.7배 증가한 9.3조 엔으로 각각 늘어났다.
전문가들은 일본 증시에 대한 근본적 재평가로 인해 상승세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1989년 다치바나증권 부장이었던 히라노 겐이치 케이에셋 대표는 니혼게이자이에 “내가 살아 있는 사이에 닛케이지수가 버블 시대 최고치를 넘은 것을 보니 감개무량하다”며 “이번 상승세는 일본 경제와 기업의 상대적 우위에 기초한 것이어서 2025년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내수가 절반을 차지하는 일본 경제에서 물가 상승으로 인한 민간 소비 악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부담이다. 민간 소비 부진으로 경제성장률이 2분기 연속 전기 대비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등 최근 경제 상태가 썩 좋은 것은 아니다. 주가가 단기간에 급상승한 것도 추가 상승세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