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성격이 강한 수련의(인턴·레지던트)들이 단체행동을 통해 국가 의료정책을 쥐고 흔드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대형병원들의 전공의 의존율이 40%가량에 이르기 때문인데, 주요 선진국들에선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다. 정부는 인건비 지원을 통해 전임의(펠로우) 채용을 대폭 늘려 향후 의료정책이 전공의들에게 발목 잡히는 현상을 근본적으로 해소해야 한다.
지난해 말 기준, 서울대병원의 전공의 비율은 전체 소속 의사의 46.2%,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은 40.2%, 삼성서울병원 38%, 서울아산병원 34.5%, 서울성모병원은 33.8%에 이른다. 다른 대형병원들도 별로 다르지 않다. 일본 도쿄대 의학부 부속병원의 전공의 비율은 10.2%, 미국 메이요클리닉(로체스터 본원)도 10.9%에 불과하다.
의료 현장에선 의과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수련의들에 의해 병원 운영이 좌우되고, 의료 서비스 질이 저하되는 문제까지 있다. 간호사들은 전공의들의 잘못된 처방을 교정하는 ‘오더 거르기’가 업무의 가장 큰 스트레스라고 할 정도로 높은 수련의 비중은 의료 왜곡의 주요 원인이었다.
게다가 경험이나 능력에 비해 과도한 역할이 주어지면서 2000년 의약 분업, 2020년 의대 정원 확대 추진 때, 전공의들은 자기 이익을 위한 파업에 나서 사회를 위험에 빠뜨렸다. 그들이 반대했던 의약분업은 항생제 오남용을 줄이는 등의 효과를 내며 정착됐고, 결국 무산된 2020년 의대 증원도 돌이켜보면 옳은 방향이었다.
정부가 발표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는 ‘병원이 전문의 중심으로 운영되도록 인적 구조를 전환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의료 서비스의 질 향상뿐만 아니라, 주요 정책이 전공의들에게 더 이상 휘둘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시급한 과제이다. 대형병원은 '전공의를 갈아서 운영된다'는 말이 있다. 기형적인 운영의 폐해가 환자를 볼모로 하는 실력 행사를 가능케 한 것이다. 정부는 이번 사안이 어떻게 마무리되든 대형병원의 전공의 의존을 대폭 낮추는 정책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