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기념관' 건립 논란이 뜨겁다. 이승만(1875~1965) 전 대통령에 대해 1919년 3·1 운동 이후 설립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을 지낸 건국 공신이라는 평가와 헌법까지 개정해 임기를 연장한 독재자라는 평가가 엇갈리면서 논란이 달궈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와 여당은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를 주장하며 기념관 건립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야당과 학계는 이 전 대통령의 공과와 관련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만큼 기념관 건립은 혈세 낭비라고 반대하고 있다.
현재까지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이하 전직대통령법)에 따라 국비를 투입해 건립된 '박정희 기념관'(2012년), '김영삼 도서관'(2020년), '김대중 도서관'(2003년), '노무현 시민센터'(2021년) 등 역대 대통령 기념관과 비교해 논란을 짚어봤다.
이승만 기념관 건립 예산 규모는 역대 대통령 기념관 중 두 번째로 많다. 국가보훈부는 지난해 기념관 건립 예산으로 3년간 설계비 24억7,000만 원 등 총 460억 원을 책정해 기획재정부에 제출했다. 이 중 국비 지원 비중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이승만대통령기념재단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모금 운동을 진행한 이후 5개월 만인 이달까지 모금액이 103억 원을 넘어섰다. 윤석열 대통령 등 정부 주요 인사와 배우 이영애 등이 참여했다. 재단 측은 국비로 건립 비용의 30%(140억 원)를 지원받고, 나머지 70%(320억 원)를 목표로 모금하고 있다고 밝혔다.
역대 건립 비용이 가장 많았던 대통령 기념관은 2012년 개관한 박정희 기념관으로 총 708억 원이 투입됐다. 전체 예산의 30%가량인 208억 원이 국비로 지원되고 나머지 500억 원은 재단 모금액으로 충당됐다. 당초 2002년 완공 예정이었지만 모금액이 부족해 국비 200억 원이 환수됐다가 행정소송 끝에 다시 지원을 받는 등 우여곡절 끝에 문을 열었다.
다른 대통령 기념관들도 수백억 원을 들여 지어졌다. 2003년 개관한 김대중 도서관 건립 비용은 124억 원이었다. 국비 60억 원, 연세대 및 후원회 부담금 64억 원으로 충당됐다. 2020년 문을 연 김영삼 도서관도 건립 비용이 총 265억 원이었다. 이 중 국비로는 75억 원을 지원받았고, 나머지는 김 전 대통령 측 사유재산과 모금액으로 채웠다. 2021년 개관한 노무현 시민센터의 경우 총 312억 원의 건립 비용이 들었다. 국비가 115억 원, 재단 모금액이 197억 원이었다.
왜 전직 대통령 기념관을 세우는 데 수백억 원의 국비를 들일까. 전직대통령법 제5조 2항은 '민간단체 등이 전직 대통령을 위한 기념사업을 추진하는 경우 관계 법령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필요한 지원을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관련 시행령인 제6조 2항은 '전직 대통령 기념관 및 기념 도서관 건립 사업'을 지원 대상으로 적어뒀다. 구체적 지원 규모 등은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결정한다.
국비 지원 상한선도 없다. 국무회의 심의를 거치면 무한정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주희 법무법인 다산 변호사는 "법으로 국비 상한을 정하면 미래에 처할 상황에 융통성 있게 대응·조율하는 데 오히려 제약이 생긴다"며 "(국비 지원 상한 기준 제정은) 이례적인 발상이자 쉽지 않은 일"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전직 대통령 예우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핵심은 전직 대통령 예우에 들이는 사회적 비용이 과도하다는 논란이 지속된다는 점"이라며 "국가 기념 사업의 필요성과 적절한 예산 규모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도 "통상 기념관 건립 국비 지원 30%도 국민 눈높이에서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다"며 "소모적인 논쟁을 줄이려면, 투명한 예산·모금액 공개를 기반으로 지원 규모에 대한 구체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와 여당은 기념관을 지어야 이 전 대통령 역사적 공과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박민식 전 국가보훈부 장관은 2022년 5월 취임 당시부터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가 자유대한민국이라는 국가정체성을 바로 세우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고 기념관 건립을 역점사업으로 추진했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지난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지난 60년 이상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선 공은 애써 무시하고 철저하게 과만 부각해왔던 '편견의 시대'였다"며 "이승만 대통령은 일제강점기 내내 독립운동에 헌신했고, 해방 후 북한 중국 러시아가 공산화된 상황에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을 수립했다. 6.25 전쟁 직후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해 한미동맹을 굳건히 했다"고 평가했다. 서울시는 종로구 송현동 열린송현녹지광장을 이승만 기념관 부지로 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의 역사적 재평가와 수백억 원의 혈세가 투입되는 기념관 건립은 별개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실장은 "이 전 대통령 공과에 대한 이견 자체는 있을 수 있다고 본다"면서도 "대통령 기록관에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도 이미 이 전 대통령 관련 분량이 있는데 별도 건물을 세워야만 공과를 재평가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 전 대통령 공과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우선이라는 목소리도 높다. 오 시장의 이승만 기념관 건립 주장에 민주당은 20일 "국민은 민생고로 고통받는데 이념 전쟁을 빙자한 역사 쿠데타를 벌이고 있다"며 "국민을 버리고 서울을 홀로 탈출하고 양민을 학살하는 것이 고작 '과'라는 말 한마디로 정리될 수 있는 문제인가"라고 논평했다. 역사학계에서도 객관적 근거를 토대로 이 전 대통령의 공과에 대한 재정립부터 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방 실장은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한다'는 대목이 있는 이상, 그 불의를 기념하는 사업은 곧 헌법에 대한 부정이나 다름없다"며 "이 전 대통령 기념관 건립이 성사된다면 전두환, 노태우 기념관을 세우는 날도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