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15일 방문한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가파리 마라도. 식당 곳곳과 거리에서 관광객들을 맞이하던 고양이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급식소가 있던 자리는 흔적조차 사라진 상태였다. 고양이들이 많이 모이던 한 주택에는 실내에서 창문을 내다보는 고양이 한 마리, 건물 뒤편에서 쉬고 있던 고양이 네 마리만 볼 수 있었다. 모두 중성화를 했다는 표시인 한쪽 귀 일부가 잘려 있었다. 이외에 한 식당에서 기르는 고양이 두 마리를 만난 게 전부였다. 이 고양이들은 처음 본 사람에게도 손길을 허락할 정도로 사람을 따랐다.
마라도 내 고양이 수가 크게 줄어든 것은 주민들도 느끼고 있었다. 주민 B씨는 "사람들이 활동하는 지역에서는 고양이를 찾기 어렵다"며 "고양이 반출 이후 새끼 고양이는 본 적도 없다"고 했다. 현장에 동행한 김란영 제주비건 대표도 "이전에 방문했을 때보다 고양이들이 확연히 줄었고, 남아 있는 고양이들 대부분은 사람의 관리하에 길러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고양이 수가 줄어든 섬에는 또 다른 변화도 생겼다. 고양이가 반출된 후 쥐가 늘어날 것을 대비해 쥐 퇴치 사업이 시작됐다. 김춘구 마라도 이장은 "쥐가 늘어난 것으로 파악해 지난해부터 주민들이 쥐 퇴치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했다. 김 이장은 또 "고양이들이 주민이나 다른 동물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없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3월 천연기념물 뿔쇠오리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마라도 고양이 45마리가 섬 밖으로 반출된 지 1년이 돼 간다. 문화재청은 당초 국가지정문화재 현상 변경을 통해 마라도 내 급식소 설치를 허가했지만 일부 조류 커뮤니티의 민원이 제기되면서 지난해 1월 고양이의 대대적 포획 계획을 세웠다. 준비 없이 무조건적 포획이 돼선 안 된다는 지적(본보 2023년 1월 21일 자)과 논란이 있었지만 결국 고양이 반출은 강행됐다.
마라도에 살고 있는 고양이 수는 얼마나 될까. 지난해 반출 전 고양이 수는 60~70마리로 추정됐는데 여기에서 45마리가 반출된 상태다. 김 이장은 "남은 고양이들의 수가 특별히 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이달 마라도를 방문한 서울대 수의인문학교실 소속 최태규 곰보금자리프로젝트 대표도 "고양이 20마리를 확인했는데 모두 중성화가 돼 있는 상태였다"며 "사람들이 살지 않는 곳에도 고양이들이 살고 있는 것을 감안해도 더 이상 수가 늘어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고 설명했다.
반면 쥐에 대한 우려는 전보다 커졌다. 최 대표는 이번에 고양이들 밥 자리 주변에서 쥐 사체 3마리를 처음 발견했다. 주민들도 아직까지 쥐로 인해 직접적인 피해를 호소하고 있지는 않지만 일부 피해 사례가 발생한 점과 앞으로 늘어날 것에 대한 우려로 지난해부터 제주도 세계유산본부로부터 예산을 지원받아 쥐 퇴치 작업을 진행 중이다. 쥐 퇴치에 투입된 예산은 지난해 6,000만 원, 올해는 1억 원이 편성됐다.
반출된 고양이들 가운데 새 가족을 만났거나 입양 전제 임시보호 가정에서 지내는 수는 18마리다. 나머지 27마리는 제주도 세계유산본부 내 컨테이너로 지어진 임시 보호시설에서 지내고 있다. 사람을 잘 따르지 않는 고양이들도 여전히 남아 있어 입양이 쉽지만은 않은 상태다.
제주지역 동물단체 연합인 유기동물 없는 제주 네트워크가 이들을 돌보며 환경 개선에 노력하고 있지만 냉난방이 이뤄지지 않는 등 오랜 컨테이너 생활이 고양이에게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 유기동물 없는 제주 네트워크 구성단체인 제주비건 김 대표는 "고양이들이 지내는 환경을 개선하고 입양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도 협조키로 했다. 강순실 제주 세계유산본부 기념물 팀장은 "동물복지 관련 부서 등과 고양이들이 편안하고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협의하겠다"며 "입양 홍보를 통해 최대한 입양 가족을 만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전했다. 강 팀장은 "추가적으로 고양이 반출계획은 없다"며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마라도를 관리해 가겠다"고 덧붙였다.
동물단체와 전문가들은 마라도 고양이 반출 사례를 놓고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 많다고 얘기한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실제 고양이가 뿔쇠오리에 대해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기초 조사나 연구도 없이 민원에 의해 정책이 시행됐다"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쫓겨난 고양이들의 몫이 됐다"고 지적했다. 최 대표는 "마라도 사례는 동물이 생태적 환경에 영향을 주는 경우 그 영향뿐 아니라 동물 개체들의 복지를 고려해 동물 정책을 수립해야 함을 보여줬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