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가 그만둬 수술할 수가 없다네요."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응급실에서 만난 이모(43)씨는 팔이 부러진 아내를 부축하며 울상을 지었다. 아무리 고통을 호소해도 치료나 수술은 불가하다는 답변을 막 들은 터였다. 이씨는 "근처 작은 병원이라도 가야겠다"며 급히 발길을 돌렸다.
전날 아버지가 당뇨병성 케톤산증으로 쓰러진 권정현(46)씨의 사정도 비슷했다. 동네 종합병원이 난색을 보여 이 병원 응급실로 왔지만 몇 시간째 대기만 했다. 권씨는 "전날 종일 연락이 안 돼 119 구급차를 타고 아침에야 왔는데 입원이 언제 될지 모르겠다"면서 한숨을 쉬었다.
전공의들이 현장에서 떠난 지 이틀째. 이른바 '빅5(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서울성모) 병원'의 의료 공백은 더 커져 있었다. 수술 불가 통보에 다른 병원으로 이송되는 환자, 평소보다 몇 배는 더 기다리다 진료를 보는 환자들이 수없이 목격됐다.
이날 오전부터 빅5 병원 대기실은 환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3주에 한 번 항암 치료를 하러 서울성모병원 혈액종양내과를 찾은 신모(57)씨는 "예상은 했지만 두 배는 족히 더 대기한 것 같다"며 "상황이 나빠져 아예 진료를 못 보는 건 아닌지 불안하다"고 말했다. 신경외과를 방문한 반모(74)씨도 "보통 한두 달 간격으로 진료를 받는데, 오늘은 넉 달 뒤에나 오라고 하더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만난 박모(42)씨 역시 아버지 항문외과 진료를 받기 위해 6시간을 꼬박 기다렸다. 그는 "최근 아버지가 혈뇨를 봐서 두 번이나 응급실에 왔는데 모두 (입원을) 거절당했다"며 답답해했다.
전날 오후 10시 기준 전국 주요 수련병원 100곳에서 근무지를 이탈한 전공의는 7,813명으로 집계됐다. 전체의 3분의 2로 대형병원이 제대로 굴러갈 수 없는 수치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장(한림대성심병원 교수)은 "상급병원은 전공의 비중이 높아 이들이 자리를 비우면 병원 전체의 진료 능력이 떨어지게 된다"면서 "전문가 대부분이 이대로라면 2주 이상을 버티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는 만큼 조만간 더 위험한 상황이 닥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