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어부가 청산가리 쏟아붓는다”… 생태계 문제로 번진 남중국해 갈등

입력
2024.02.2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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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중국, 시안화물 이용 조업" 주장
증거 확보 후 국제상설재판소 제소 예정
중국 "터무니없는 날조" 반박...갈등 고조


필리핀과 중국이 남중국해 생태계 파괴 문제를 두고 충돌했다. 중국 어민들이 자국 해상에서 독성 화학물질을 사용해 조업 행위를 한다고 필리핀이 비판하자 중국은 ‘근거 없는 비방’이라고 거세게 반발했다. 남중국해 영유권을 둘러싸고 지난해부터 팽팽한 신경전을 이어온 양국 갈등이 환경 문제로까지 번지는 분위기다.

"청산가리 조업으로 238억 원 피해"

20일 필리핀스타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나자리오 브리게라 필리핀 수산자원국 대변인은 전날 “중국 어부들이 서필리핀해(남중국해) 스카버러 암초(중국명 황옌다오) 인근 수역에서 시안화물(청산가리)을 살포해 어업을 하고 있다”며 “이는 해양 생태계를 파괴하고 필리핀 어민의 조업을 의도적으로 방해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시안화 어업(cyanide fishing)'은 산호초 근처나 어장에 청산가리를 뿌려 어획물을 얻는 조업 방식이다. 독성으로 물고기를 기절시켜 건져내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을 상처 없이 어획하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시안화물 방출 지점 산호 군락이 파괴되는 것은 물론, 인근 바다에 독성 물질이 누적되면서 어족 자원 생장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라파엘 게레로 필리핀 국립과학기술대 교수는 마닐라불리틴에 “시안화물은 사람, 물고기, 산호초 등에 모두 치명적”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몇 해 전부터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에서는 시안화 어업을 제한하고 있다.


필리핀 주장대로라면 중국이 분쟁 지역인 남중국해에서 불법 조업을 하고, 해양 생태계까지 위협하고 있다는 의미다. 필리핀 수산 당국은 시안화물 영향으로 10억 페소(약 238억 원)의 해양 자원 피해가 발생했다고 추정했다.

중국 "터무니없는 날조" 반박

일단 필리핀 정부는 문제를 공식 제기하지는 않았다. 필리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20일 수산자원국에 구체적인 조사와 증거 확보를 요청했다. 사실로 확인될 경우 법무부가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에 중국의 해양 생태계 파괴 행위를 제소한다는 방침이다.

필리핀의 주장에 중국은 “터무니없는 날조”라고 맞섰다. 주필리핀 중국 대사관은 “필리핀 수산 당국의 전문성이 의심된다”고 지적했고,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중국은 생태계와 어족 자원을 보호하고 위법 조업 행위를 단호하게 단속하고 있다”며 의혹에 선을 그었다. 관영 글로벌타임스 등 중국 매체들도 필리핀이 악의적 공격을 하고 있다고 힘을 보탰다.

남중국해 환경 문제를 둘러싼 역내 갈등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필리핀 해상경비대는 중국 민병대가 남중국해상에 인공섬을 만드는 과정에서 산호초를 대거 파괴했다고 주장했다. 2021년에는 미국 인공지능(AI) 개발업체 시뮬래리티가 2016년부터 5년간 중국 어선이 떼 지어 정박하며 막대한 양의 인분과 오폐수를 쏟아낸 탓에 남중국해 생태계가 회복 불능에 가까울 정도로 재앙을 맞았다고 분석했다.

하노이= 허경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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