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흘간 내리는 봄비

입력
2024.02.20 17: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19일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가 4일간 이어진다. 21일부터 기온이 다시 떨어지며 아침저녁으론 눈이 뒤섞인 비가 내린다고 하니, 이 비는 봄비일까, 겨울비일까. 절기로 볼 때 ‘눈이 녹아 비가 된다’는 우수(雨水)에 시작된 만큼 봄비라고 여길 만하다. 기상청 기준으로는 찬 시베리아 고기압에 밀려온 비구름에서 내린 비면 겨울비, 남서쪽에서 발생한 따뜻한 수증기를 머금은 구름이 몰려와 비를 내리면 봄비로 본다는 점에서도 봄비다.

□봄비와 겨울비는 절기나 기상청의 객관적 기준뿐 아니라 그 비를 바라보는 감성에서도 차이점이 있다. “사랑은 봄비처럼 내 마음 적시고… 이별은 겨울비처럼 두 눈을 적시고”라는 가사로 유명한 가요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을 임현정이 2003년 발표한 이후 여러 가수가 따라 부르는 이유도 이 노래가 봄비와 겨울비의 차이를 잘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외롭고 춥고 축축한 현실은 비슷하지만, 봄비에는 겨울비에는 없는 어떤 따뜻함이 섞여 있다.

□2015년 개봉 영화 ‘내부자들’에 쓰인 이은하의 ‘봄비’도 따뜻함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영화에서 깡패로 나오는 이병헌이 이 노래를 두 번 부른다. 비자금 담당자를 협박하기 직전에 처음, 권력자들 술판에 접대 여성을 태우고 가는 승합차 안에서 두 번째 흥얼거리는데, 음정 박자가 정확하고 부드러워 장면을 더 어둡게 만든다. 그런데 영화를 다시 보니 그 노래가 하기 싫은 나쁜 짓을 해야 하는 내적 갈등 속에서도 희망을 찾으려는 읊조림처럼 들린다. “봄비 속에 떠난 사람, 봄비 맞으면 돌아왔네”라는 가사처럼.

□“태산이 가로막힌 건 천지간 조작이요/ 임 소식 가로막힌 건 인간 조작이로구나/ 우수 경칩에 대동강 풀리니/ 정든 임 말씀에, 요 내 속 풀리누나”라는 평안도 지역 민요는 우리 조상들도 우수 봄비를 ‘가로막히고, 꽁꽁 언’ 것들이 풀리는 따뜻한 희망의 소식으로 여겼음을 보여준다. 비록 4일간 이어진 우수 봄비가 종국에는 눈발로 바뀌더라도, 우리는 알고 있다. 봄이 머지않음을.

정영오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