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학년도부터 신입생 전원을 '무전공'으로 선발한 덕성여대가 최근 독어독문학과와 불어불문학과 전공을 폐지하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학령인구 감소와 무전공 모집 확대에 따른 대학사회의 인문학 위기가 현실로 나타난 셈이다.
학생, 교수, 동문들로 꾸려진 민주덕성 비상대책위원회는 20일 학교 측의 독·불문학과 전공 폐지 추진 방침과 관련, 서울 종로구 덕성여대 종로캠퍼스를 찾아 이사회와 면담을 요청했다. 이들은 이 자리에서 "김건희 총장은 지난해 부결된 독·불문학과 신입생 미배정 학칙 개정안을 이달 재차 상정하며 정상적인 학사 운영을 심각하게 방해했다"며 김건희 총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덕성여대는 2025학년도부터 독문과와 불문과 2개 전공 신입생을 미배정하는 내용의 학칙 개정안을 이달 2일 공지했다. 학교 측은 "재학생 감소로 해당 전공의 정상적 운영이 불가하다"며 "학령인구 급감에 따른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개정 사유를 밝혔다. 해당 개정안은 전날 대학평의원회에서 부결됐다.
비대위에 따르면, 학교 측은 독·불문학 전공 폐지를 골자로 하는 학칙개정안을 지난해 6월 처음 공지했다. 당시에도 학내 구성원 다수가 반대해 대학평의원회에서 최종 부결됐다. 심의 결과를 받아들인 김 총장은 "향후 학사구조개편위원회를 구성해 전공 평가 기준, 방법 등을 정하고 그에 따라 학사구조 개편을 재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이후 대학 측은 학사구조개편위원회를 만들어 평가지표에 근거해 전공 평가를 시행한 뒤, 이달 초 지난해와 동일한 내용의 학칙 개정안을 공지했지만 재차 부결된 것이다.
두 학과 교수들은 김 총장이 불법으로 전공 폐지를 밀어붙이고 있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학칙에는 전공을 폐지하거나 신입생을 미배정할 수 있는 규정이 없다"며 "총장은 학칙 제4조를 학과 폐지 근거로 제시했지만, 해당 학칙은 각 단과대학의 입학정원과 각 전공의 최대 배정 인원의 평가 및 조정에 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공 입학정원은 평가 대상이 아닌 데다, 총장 권한도 평가시기와 방법에 한정된다는 주장이다.
이번 갈등은 최근 대학가에 불고 있는 무전공 모집 확대, 첨단분야 정원 증원의 역효과로 서울권 사립대에서도 인문학이 설 자리를 잃어가는 추세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곽정연 덕성여대 독어독문학과 교수는 "이미 무전공 모집 시행으로 전공쏠림 현상이 심각하다"며 "한국사회의 통합을 위해 인문학은 반드시 필요한 학문"이라고 강조했다.
덕성여대 관계자는 "학교 측이 학생들의 독·불문학과 지원률이 낮다 보니 학과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면서 "대학경쟁력 강화를 위해 구성원 전반이 회의를 거쳐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