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미국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 '글로벌파운드리스'에 2조 원이 넘는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2022년 '반도체 지원 및 과학 법'(칩스법)이 제정된 이래 10억 달러(약 1조3,380억 원)대 보조금 지급 계획이 나온 건 처음이다. 이를 시작으로 미국 정부가 거액의 보조금 보따리를 연이어 풀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다음 수혜 대상으로는 미국 기업인 인텔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미국 기업을 먼저 챙기겠다는 의사 표명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미국 상무부는 글로벌파운드리스에 15억 달러(약 2조40억 원) 규모의 보조금을 지원하는 내용의 예비 협약을 체결했다고 19일(현지시간) 밝혔다. 칩스법에 근거한 결정으로, 보조금은 글로벌파운드리스가 뉴욕·버몬트주(州)에서 추진 중인 신규 설비 투자, 증설 등에 쓰일 예정이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 투자로 뉴욕에 9,000개의 건설 일자리와 1,500개의 제조업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WSJ는 "이번 발표는 칩스법 제정 후 첫 대규모 지원"이라고 전했다. 칩스법은 미국 내 반도체 생산 시설 확대에 5년간 총 520억 달러(약 70조 원) 규모의 정부 보조금을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앞서 미국 상무부는 영국 방산업체 BAE 시스템과 미 반도체 업체 마이크로칩 테크놀로지 등 두 곳을 대상으로 보조금 지급 계획을 내놨으나 각각 3,500만 달러와 1억6,200만 달러로 액수가 적었다.
처음으로 거액을 지원받게 된 글로벌파운드리스는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3위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업체 중 하나다. 이 시장 1위는 대만 TSMC이고, 2위는 삼성전자다. 글로벌파운드리스는 자동차 칩을 주로 생산하는데, 지난해 제너럴모터스(GM)와 장기 칩 공급 계약을 맺어 화제를 모았다. 미국 정부의 조속한 보조금 지급 결정에는 이 회사의 최대 고객사가 자국 자동차 업체라는 점도 고려됐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시장에서는 다음 달 7일로 예정된 바이든 대통령의 의회 국정 연설 이전에 대규모 보조금 지원 계획이 더 발표될 것으로 보고 있다. 재선에 도전하는 바이든 대통령이 반도체 공장 유치를 재임 기간 최대 치적으로 내세우려 하고 있어서다.
현재 약 170개 기업이 보조금 신청서를 내고 대기 중인데, 다음 대상이 될 가능성이 가장 큰 업체로는 인텔이 꼽힌다. 최근 블룸버그통신은 미국 정부가 오하이오·애리조나주에서 반도체 공장 신설 및 확장 공사를 하고 있는 인텔 측과 100억 달러(약 13조3,800억 원) 이상의 보조금을 지원하는 방안을 놓고 논의 중이라고 보도했다. 계획이 확정될 경우 미국 업체들이 우선적으로 수혜를 받는 셈이 된다.
TSMC 역시 인텔과 함께 우선 지원 대상에 포함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TSMC가 400억 달러를 들여 2개 공장을 짓고 있는 애리조나가 경합주이기 때문이다.
자국 기업 보호 기조에 더해 정치적 이해관계까지 얽히면서, 결과적으로 삼성전자가 불이익을 받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삼성전자는 공화당 텃밭인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공장을 짓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보조금 지급이 늦어질수록 양산 계획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커진다"고 말했다. 다만 보조금 집행 불확실성 탓에 공장 가동이 미뤄지면 미국 반도체 산업 부활도 그만큼 늦어지는 만큼, 수개월 이상 시간을 끌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