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위기 맞은 정몽규… 집권 11년간 국제 무대서도 설 자리 잃어

입력
2024.02.2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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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했다 하면 떨어지는 축구 외교
스포츠 외교 참사 수준... 한국 축구 위상 갉아먹어

아시안컵 4강 탈락에 이어 대표팀 내 불화와 감독 경질 등 잇따른 악재로 리더십 위기를 맞은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에 대한 사퇴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축구계에선 그가 회장으로 집권한 11년간 한국 축구가 국제 무대에서도 설 곳을 잃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경쟁 없이 거저먹거나 경쟁에 밀려 떨어지거나

정 회장의 축구 외교는 한마디로 '경쟁 없이 거저먹거나 경쟁에 밀려 떨어지거나'다.

그는 2013년 제52대 협회장에 선출된 뒤 처음 출마한 FIFA 집행위원 선거에서 후보 4명 중 공동 최하위로 낙마했다. 다행히 FIFA의 6개 대륙별 연맹 중 하나인 아시아축구연맹(AFC) 집행위원직은 받았는데, 이는 동아시아에 배정된 3자리에 정 회장 등 3명만 후보로 나서 별도 투표 없이 선출됐다. 이후 2017년에는 기존 AFC 부회장이 건강 악화로 사임해 공석이 된 자리에 당시 AFC 회장의 추천으로 추대돼 부회장직을 꿰찼다.

2017년 FIFA 평의회에도 경쟁 없이 거저 입성했다. 집행위가 과거 FIFA 부패의 온상으로 지목되자 2016년 이를 대체할 기구로 평의회가 신설됐다. 아시아 몫으로는 남성 3명과 여성 1명 등 총 4자리가 배당됐다. 남성 후보자는 최종 3명만이 남아 정 회장 등은 무투표 당선됐다.


전략도 외교력도 없는 정몽규식 축구 외교

정 회장의 축구 외교 밑천이 본격적으로 드러난 건 2019년부터다. 정 회장은 2019년 일본, 필리핀, 인도, 말레이시아 등에 밀리며 후보 7명 중 6위에 그쳐 FIFA 평의회 재입성에 실패했다. AFC 부회장직도 몽골 후보와의 맞대결에 져 연임에 실패했다. '아시아의 호랑이'라는 한국 축구 위상을 감안할 때 스포츠 외교 참사 수준이다.

당시 정 회장은 "중동 세력들이 독점한 것에 반대 목소리를 낸 게 낙선 이유"라고 주장했지만, 뚜렷한 선거 전략이나 외교력 없이 무작정 반기를 든 것부터가 아마추어적인 행태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축구계 관계자는 "이미 회장 7년 차였는데, 그 정도 계산도 안 하고 덤볐다면 외교의 '외' 자도 모르거나 의지가 없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2023 아시안컵 유치 19대0 패배... 오락가락 외교의 최후

2023 카타르 아시안컵도 정 회장의 대표적 외교 실패 중 하나다. 정 회장은 2019년 AFC 임시총회를 단 20일 앞두고 갑자기 "여자 월드컵과 일정이 겹친다"며 아시안컵 유치 신청을 철회했다. 당시 8개 유치 희망 도시까지 정해졌던 시점이었다.

갑작스러운 철회에 축구계에선 정 회장이 잇따른 낙마로 자신감을 잃은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FIFA 평의회, AFC 부회장 등 선거에서 모두 패했으니 아시안컵 유치도 가망이 없는 것으로 보고 여자 월드컵 핑계를 댔다는 것이다. 실제 축구협회는 그해 12월 여자 월드컵 유치 신청마저도 "규정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며 철회했다.

정 회장은 그러나 2022년 중국이 2023 아시안컵 개최권을 반납하자 뒤늦게 유치 경쟁에 다시 뛰어들었고, 오락가락 외교는 유치 투표에서 카타르에 19대 0으로 참패하며 처참히 무너졌다.


반복되는 외교 실패... 한국 축구 위상까지 갉아먹어

문제는 정 회장의 연이은 외교 참사가 개인의 실패를 넘어 한국 축구 위상까지 갉아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선수들뿐만 아니라 박항서, 신태용, 김판곤 등 한국 축구 지도자들도 해외로 진출하고 있는 와중에 협회가 이를 보다 활성화하고, 지원하지는 못할망정 허술한 전략으로 외교적 실패를 거듭하면서 이들의 입지를 좁히고 있어서다. 또 다른 축구계 관계자는 "실패할 때마다 대책을 마련하겠다 해놓고 정 회장 집권 11년간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며 "이제는 결과물에 책임을 질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진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