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벌금 폭탄’에 현금 바닥 위기… 대선 가도 영향 받나

입력
2024.02.19 04:30
법원 “‘사기대출’ 이익 5000억 원 토해라”
‘명예훼손’ 합치면 6000억… 부동산 팔까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수천억 원대 벌금 폭탄에 쌓아 둔 현금이 바닥날 위기에 놓였다. 재판에 워낙 비용이 많이 들어 11월 대선을 앞두고 정작 선거 캠페인에 쓸 돈이 모자라게 생겼다.

미국 뉴욕 맨해튼지방법원의 아서 엔고론 판사는 16일(현지시간) 자산을 부풀려 은행에서 사기 대출을 받은 혐의로 민사 재판에 회부된 트럼프 전 대통령 및 트럼프 그룹 등 그의 사업체에 3억5,500만 달러(약 4,700억 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장남인 트럼프 주니어와 차남 에릭에게는 400만 달러씩, ‘트럼프의 회계사’로 불렸던 앨런 와이셀버그에게는 100만 달러를 벌금으로 내라고 명령했다. 다 합치면 부당 이득으로 인정돼 토해 내야 하는 돈의 액수가 3억6,400만 달러(약 4,800억 원)에 이른다.

벌금이 전부가 아니다. 엔고론 판사는 피고의 경영 활동도 제한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3년간, 두 아들은 2년간 뉴욕주(州) 내 사업체에서 고위직을 맡을 수 없다. 또 이들은 3년간 뉴욕주 금융기관에 대출 신청도 하지 못한다. 소송을 제기한 레티샤 제임스 뉴욕주 검찰총장은 “누구도 법 위에 설 수 없다는 게 증명됐다”며 이날 판결을 환영했다.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선거 개입이자 마녀 사냥”이라고 비난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급해야 할 돈에는 배상금도 있다. 패션 칼럼니스트 E 진 캐럴에게 성추행 관련 명예훼손 위자료 8,330만 달러(약 1,100억 원)를 주라는 지난달 뉴욕 남부연방지방법원 배심원단 평결 때문이다. 이 돈까지 합할 경우 벌금 이자를 빼도 트럼프 전 대통령이 내야 할 돈은 4억3,830만 달러(약 5,800억 원)에 달한다.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을 파산시킬 정도는 아니다. 현재 트럼프 전 대통령 일가의 순 자산은 26억 달러(약 3조4,000억 원)로 평가된다. 문제는 자산 대부분이 호텔이나 골프장 등 부동산에 묶여 있다는 점이다.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장 갖고 있는 현금성 자산은 3억5,000만 달러 정도여서 8,000만 달러 이상 모자란다. 개인 용도로 자산을 빼돌리지 못하도록 검찰이 감시할 가능성이 커 자산을 처분하기도 만만치 않다.

선거 자금은 대부분 모금으로 마련되기 때문에 트럼프 전 대통령 주머니에서 나갈 일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다만 재정 위기가 압박으로 작용하는 것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해 법률 비용으로 5,120만 달러(약 680억 원)를 썼고, 추가로 쓸 수 있는 자금이 2,660만 달러(약 350억 원) 정도다. 형사 재판이 본격화할 상반기에 이 돈을 다 쓰고 막상 대선 본선 경쟁이 치열해지는 7월쯤에는 법률 비용 자금이 고갈되리라는 게 블룸버그 관측이다. 그럴 경우 ‘부동산 재벌’이 돈 나올 구멍이 없어 선거운동 자금을 줄여야 하는 신세가 될 수도 있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권영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