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대 정적이자 러시아 반체제 인사인 알렉세이 나발니의 갑작스러운 옥중 사망을 두고 살해설이 끊이지 않는다. 시신 은폐, 보안 카메라 해체 등 그의 죽음을 둘러싼 수상한 정황이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다. 서방 곳곳에서 푸틴 대통령 성토가 이어지는 가운데, 러시아 당국은 나발니를 추모하는 시민 수백 명을 구금하며 정치적 억압을 이어 가고 있다.
'살해 의혹'이 제기된 이유는 복합적이다. ①우선 16일(현지시간) 사망 직전까지 나발니의 건강 상태가 양호해 보였다는 점이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17일 "나발니는 (사망 전날인) 15일 법원 심리에 참여한 영상에서도 건강하고 기분이 좋아 보였다"고 지적했다. 나발니 측 레오니트 솔로비요프 변호사도 "사망 이틀 전(14일) 나발니를 면회했을 때는 모든 것이 괜찮았다"고 러시아 독립 언론 노바야 가제타에 말했다.
게다가 ②러시아 측에선 그의 사인을 정확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WP에 따르면 나발니의 모친 류드밀라 나발나야는 17일 교도관들로부터 그가 '돌연사 증후군'으로 사망했다고만 들을 수 있었다. 영국 BBC방송은 "돌연사 증후군은 뚜렷한 원인 없이 심장마비로 급사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포괄적이고 모호한 용어"라고 꼬집었다.
③나발니의 시신도 아직 행방불명이다. 나발니의 모친이 안내받은 영안실에서는 시신이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고 나발니의 대변인 키라 야르미쉬가 WP에 밝혔다. 교도소 관계자들은 나발니의 모친에게 1차 검시에서 사인이 밝혀지지 않아 2차 검시가 필요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④나발니 사망 전 러시아 정보요원들이 교도소 보안 카메라 등을 조작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활동가들을 인용해 나발니가 사망하기 이틀 전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장교들이 교도소를 방문해 보안 카메라와 도청 장치의 연결을 끊고 해체했다고 보도했다. 더타임스에 따르면 인권단체 굴라구.넷은 '외딴 교도소 내 사망을 2분 만에 공식 발표하는 등 러시아 당국의 소식 전달이 지나치게 빨랐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노바야 가제타는 나발니가 사망 당일 섭씨 영하 20도의 기온에 운동장에서 4시간 동안 있었다는 주장을 전하기도 했다.
이런 정황을 바탕으로 나발니의 측근들은 러시아 당국이 살해 사실을 숨기기 위해 그의 시신을 빼돌렸다고 의심한다. 야르미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나발니는 살해됐으며, 푸틴이 직접 그 명령을 내렸다고 확신한다"고 주장했다.
나발니는 2011년 반부패재단을 창설해 푸틴 대통령과 측근들의 부패와 비리를 폭로하는 등 반정부 운동을 주도해 왔다. 그는 2021년 1월 체포돼 극단주의 단체 조직 및 활동 등의 혐의로 징역 30년 형을 선고받고 3년째 복역 중이었다. 그러다 러시아 최북단 시베리아 지역 야말로네네츠 자치구 제3 교도소에서 16일 사망했다고 러시아 당국이 발표했다.
나발니 사망 이후 러시아 당국은 그를 추모하던 시민 수백 명을 체포하며 애도마저 억눌렀다. 미국 CNN방송은 현지 인권단체 OVD-Info를 인용, "러시아 전역에서 나발니 추모에 참여한 400명 이상이 구금됐다"고 전했다.
서방은 일제히 러시아를 성토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6일 "알렉세이의 사망 소식이 놀랍지 않으며, 격분하고 있다"며 "나발니의 죽음이 푸틴과 그의 깡패들이 한 어떤 행동에 따른 결과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비난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외교장관 역시 서방 주요 7개국(G7)과 함께 러시아에 대한 대응을 검토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나발니 살해 의혹 제기는) 완전히 광기"라며 "용납할 수 없다"고 맞받았다. 미국 AP통신은 "푸틴 대통령은 다음 달 대선에서 집권 연장을 준비하며 서방의 분노를 무시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