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 7년 넘은 법관 지원자 급증했는데, 임용은 '제자리', 왜?

입력
2024.02.1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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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대 들어 지원자 200명대 급증
임용 30명 안팎, 10년 이상은 한자리
실력 부족, 낮은 고연차 선호 등 원인
배석판사 경력 3년 제한 등 개선 필요

7년 이상 법조 경력을 지닌 '고연차 법조인'들이 신임 법관에 지원하는 수가 200명대로 치솟았다. 그런데 합격자는 여전히 30명 안팎에 그치고 있다. '법조 경험이 많을수록 지혜로운 재판을 할 것'이라며 도입한 경력법관 선발 제도의 전제가 잘못됐다는 뜻이다. 원인은 "실력 부족"에 있었다.

18일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법원행정처로부터 제출받은 '법관 지원·임용 현황'에 따르면, 2013년 '법조일원화' 시행 후 지난해까지 총 3,383명이 지원해 1,195명이 법관으로 임용됐다. 일정 기간 이상 법조 경력을 갖춘 법조인 중에서 법관을 뽑는 제도로 재판의 전문성과 다양성을 강화할 목적으로 도입됐다.

제도 시행 5년까진 경력 법조인들의 법관 지원은 평균 27명에 불과해 제도 취지가 무색했다. 하지만 2020년 들어 100명대로 급증하더니 최근 2년 동안은 200명대 중반까지 늘었다. 세부적으로 7~10년 경력 법조인은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107→162→198→176명으로, 10년 이상 법조인은 31→36→64→56명으로 지원자가 증가했다. 5~7년 경력 법조인의 지원자 수가 2021년 317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재작년과 지난해 각각 230명, 197명으로 하락한 것과 대조적이다.

주목할 부분은 경력 7년 이상 법조인의 실제 임용 수치다. 대개 법조 경력이 7년을 넘으면 그간 쌓은 경험을 토대로 법관의 역할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것으로 판단돼 임용 직후 바로 재판에 투입하는, 소위 '즉시전력'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지원자 증가세에 비해 합격자 수는 큰 변동이 없었다. 제도 시행 초기와 비교해 다소 늘긴 했어도 7~10년 경력 법조인의 법관 임용은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는 연 평균 25명에 머물렀다. 심지어 경력 10년 이상 법조인은 지원자 급증에도 임용은 한 자릿수로 제자리걸음을 했고, 합격률도 2020년을 제외하곤 10%를 넘기지 못했다.

법관 임용 과정에 관여한 법관들의 말을 들어보면, 지원과 임용의 괴리를 낳는 가장 큰 이유는 실력 부족이었다. 경력법관 면접에 참여했던 수도권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고연차 법관 지원자들은 경험이 많아 넓은 시야로 사안을 볼 수 있지만, 특정 사건에 구체적 판례를 적용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등 법 지식이 많지 않아 보였다"고 말했다. 필기와 면접으로 이뤄진 법관 임용 시험의 난도가 높아 합격하려면 직장을 그만두고 몇 개월간 준비에 매달려야 하는 점도 원인으로 꼽힌다. 지원자들의 능력이 법원이 요구하는 법관으로서의 수준에 못 미치는 셈이다.

고연차 법조인을 선호하지 않는 법원 분위기도 한몫했다. 실제 늦은 나이에 임용된 법관이 체력이 달리거나 나이 차가 얼마 나지 않는 재판장과 갈등을 겪는 등 부적응 사례가 법원 내부에서 회자되곤 한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해 재판에 악영향을 미친 일도 간혹 있다. 서울의 한 부장판사는 "갈수록 사건이 복잡해져 사실관계 확정과 법리 적용이 어려워진 현실에서 고연차 법조인을 향한 부정적 평판은 악화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결국 법관 지원자에게 요구하는 최소 법조 경력을 너무 길게 잡을 필요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내년부터 7년, 2029년부터는 10년 이상의 법조 경력을 보유한 법조인만 판사에 지원할 수 있도록 한 현행법을 바꿔야 한다는 얘기다. 최근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합의 재판부의 배석판사는 3년 이상 경력 법조인 중에서 선발하는 방안이 적절하다고 밝힌 조희대 대법원장의 발언도 이런 평가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다만 '법관의 다양화'가 재판에 도움을 주는 측면도 있는 만큼 법조 경력을 줄이지 말아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박준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