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국대? 라건아 “전쟁이란 각오…귀화선수 계속 필요” [인터뷰]

입력
2024.02.1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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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초 태극마크 달아 5월 종료
이달 호주-태국전 투지 활활
"상대 랭킹에 위축 안 되고 자신감 가져야"

농구계에서 ‘리카르도 라틀리프’라는 이름은 이제 생소하다. 2018년 1월 특별귀화로 바꾼 한국 이름 라건아(35·KCC)가 입에 더 달라붙고 친숙하다. 그런데 그가 한국 농구의 골 밑을 굳건히 지키는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오는 5월 말이면 라건아와 대한민국농구협회, 프로 소속팀이 맺은 3자 간 계약이 끝나기 때문이다. 30대 중반의 나이와 대표팀 내 세대교체 분위기를 감안할 때 계약 연장은 불투명하다.

선수 본인도 태극마크와 이별할 순간이 왔다는 걸 어느 정도 직감하고 있었다. 16일 농구 국가대표팀에 소집되기 전 경기 용인 KCC 연습체육관에서 만난 라건아는 “한국에서 외국인 선수를 처음 국가대표로 발탁했는데, 그게 나여서 태극마크는 의미가 깊다”며 “아직 은퇴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표팀에 있는 기간만큼은 한국을 대표해서 뛰고 싶다”고 말했다.

2012년 모비스에서 처음으로 한국프로농구(KBL)에 입성한 라건아는 벌써 13번째 시즌을 뛰고 있다. 전성기 시절 왕성한 활동량이 사라졌지만 골 밑 존재감은 아직 국내 선수 중 라건아를 넘어설 선수가 없어 보인다. 안준호 신임 감독이 새로 꾸린 대표팀에 계약 만료를 앞둔 라건아를 포함시킨 이유이기도 하다. 대표팀은 19일 호주로 출국해 22일 호주와 2025 국제농구연맹(FIBA) 아시아컵 예선 첫 경기를 치르고 25일에는 강원 원주에서 태국을 상대한다.

라건아는 마지막일지 모르는 국가대표 경기인 만큼 투지를 불태우고 있다. 그는 “전쟁이라는 각오로 뛸 것”이라며 “국가대표는 좀 더 책임감이 생기는 자리”라고 강조했다.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부진을 만회하고 싶은 마음도 크다. 당시 대표팀은 일본 2진급에 패하는 등 저조한 경기력 끝에 역대 최악의 성적(7위)을 냈다.

라건아는 “아시안게임 때 못했던 건 사실이다. 나를 비롯해 오세근, 김선형(이상 SK) 등 주축 선수들이 많이 다쳐 호흡을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며 “이번 A매치에는 대표팀 동료들에게 동기부여를 하기 위해 전쟁이라는 단어를 써서 각오를 전했다”고 설명했다.

어느덧 대표팀 7년 차인 라건아는 한국 농구의 추락을 몸소 경험하며 뼈 있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그는 “국가대표만 가면 선수뿐 아니라 코칭스태프도 걱정부터 하는데, 가장 중요한 건 자신감이다. (SK와 정관장이 선전 중인) 동아시아 슈퍼리그(EASL) 대회만 보더라도 KBL 팀들이 기량 높은 다른 나라의 팀을 상대로 좋은 경기를 한다"면서도 "그런데 막상 태극마크를 달면 상대 선수의 신체 능력, 국가 랭킹을 보고 위축되는 경향이 있다. 한국 특유의 자신감으로 부딪쳤으면 좋겠다. 부정적인 생각을 말고 우리 한국만의 농구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라건아는 자신이 대표팀을 떠나더라도 "한국 농구에는 귀화 선수가 꼭 필요하다"고 힘줘 말했다. 라건아는 “골 밑뿐만 아니라 외곽에서도 뛸 줄 아는 귀화 선수 1명은 대표팀에 있어야 한다. 코트 위 존재감 측면도 그렇고 국내 선수들의 투쟁심을 불러일으키는 선수가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대표팀 계약 연장 제의가 들어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엔 “아직 그 부분에 대해 말하기는 어렵다”고 즉답을 피하면서도 “라건아라는 이름이 참 좋다. 외국인이 아닌 한국 선수라는 느낌이 들어 더 정감 간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A매치로 인한 프로농구 휴식기 때 대표팀에서 힘을 쏟고 돌아오는 라건아는 ‘슈퍼팀’ KCC의 대약진도 이끌어야 한다. KCC는 허웅, 최준용, 송교창, 이승현 등 화려한 국가대표 라인업을 갖추고도 10개 팀 중 5위에 머물러 있다. 라건아는 “팀에 부상자가 많아 완전체로 뭔가 보여줄 시간이 부족했다”며 “최준용이 돌아오고, 100% 전력을 가동하면 막판에 슈퍼팀의 면모가 나올 것”이라고 자신했다.

김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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