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관마저 '왜 돌아왔나' 물었다는 나발니… "포기 말라" 유언 재조명

입력
2024.02.18 08:28
SNS·다큐멘터리… 생전 발언 재조명
망명 끝낸 이유 "조국·신념 포기 못 해"
"내가 살해당하면 우리가 강하다는 뜻"

"포기하면 안 된다. 저들이 나를 죽이기로 했다는 것은 우리가 엄청나게 강하다는 뜻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대 정적이자 러시아 야권 지도자였던 알렉세이 나발니가 숨진 뒤 그의 생전 발언이 재조명되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17일(현지시간) 러시아에서 감옥에 갈 것이 확실시됐던 나발니가 독일 망명 생활을 접고 2021년 귀국한 이유를 다뤘다. NYT는 "나발니에게 러시아인들이 반복해서 물었던 질문이 하나 있다"며 "교도관조차 녹음 장치를 끄고 그에게 왜 (체포될 것을 알고도) 돌아왔는지 물었다고 그는 말했다"고 전했다.

나발니는 2000년 러시아 정계에 발을 들인 이래 푸틴 반대 운동을 주도했다. 그러다 2020년 8월 항공기에서 푸틴 정권 소행으로 추정되는 독극물 테러를 당해 혼수상태에 빠진 채 독일로 옮겨지기도 했다. 나발니는 겨우 회복했지만 2021년 1월 다시 러시아로 돌아갔다. 귀국 즉시 체포돼 극단주의 활동 등 혐의로 징역 30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해 왔고, 16일 혹한으로 악명 높은 러시아 최북단 시베리아 지역 야말로네네츠 자치구 제3 교도소에서 사망했다.

나발니는 지난달 17일 귀국·체포 3주년을 맞아 올린 페이스북 글에서 "나에게는 조국이 있고 신념이 있다. 그리고 나는 조국이나 신념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고 러시아로 돌아온 이유를 밝혔다. 이어 그는 "나는 첫 번째도 두 번째도 배신할 수 없다"며 "당신의 신념이 가치 있는 것이라면 기꺼이 그 신념을 옹호해야 한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약간의 희생을 하라"고 적었다.

NYT는 2022년 오스카상을 수상한 다큐멘터리 영화 '나발니'도 재조명했다. '나발니'를 연출한 다니엘 로허 감독은 영화 말미에 나발니에게 "만약 당신이 살해당한다면 러시아 국민에게 어떤 메시지를 남기겠느냐"라는 질문을 다시 던진다. 그러자 나발니는 영어로 "내가 죽었을 때 남길 메시지는 아주 간단하다.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답한다.

로허 감독이 러시아어로 다시 답해 달라고 부탁하자 나발니는 "포기하면 안 된다. 저들이 나를 죽이기로 했다는 것은 우리가 엄청나게 강하다는 뜻이다. 우리는 이 힘을 이용해 포기하지 않고, 우리가 나쁜 이들에게 억압당하는 거대한 힘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이어 "악의 승리를 위해 필요한 유일한 것은 선한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가만히 있지 말라"고 힘주어 말한 뒤, 활짝 웃는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나발니의 죽음을 두고 "(푸틴은) 주요한 정치적 가시뿐 아니라 멀리 있는 정치적 가시도 제거했다"며 "푸틴 대통령에 대한 잠재적 비판자들을 주목하게 만든 또 하나의 발전"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WP는 "일부는 그처럼 저명하고 존경받는 정치인의 옥중 사망이 푸틴에게 일련의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지적했다.

김나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