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이 든 성배' 될 차기 감독... 홍명보·김기동 등 현역 감독 거론에 역풍 우려

입력
2024.02.16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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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규 "차기 감독 빠르게 선임하겠다"
3월 A매치 위해 국내 감독이 임시로 맡을 듯

위르겐 클린스만 남자 축구대표팀 감독이 경질되면서 차기 감독 선임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은 16일 클린스만 감독 경질을 발표하면서 "2026 북중미 월드컵 2차 예선을 위한 차기 감독 선임 작업에 바로 착수하겠다"며 "이에 앞서 새로운 전력강화위원회(전력강화위)를 구성하고, 위원장을 선임해 (차기 감독 선임 작업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새로 꾸려지는 전력강화위는 차기 대표팀 감독 후보군을 구성한 뒤 우선 협상 순위에 따라 개별 협상을 진행하고, 계약기간과 금액을 확정하는 과정을 거쳐 새 감독을 선임할 방침이다. 다만 이 경우 한 달 앞으로 다가온 2026년 북중미 월드컵 2차 예선 기간을 맞추기 어려운 만큼, 한두 달 동안 국내 지도자들이 임시로 대표팀을 맡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홍명보 울산HD 감독과 김기동 FC서울 감독, 황선홍 파리올림픽 축구대표팀 감독, 최용수 전 강원FC 감독 등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문제는 다른 때와 달리 이번의 경우, 대표팀 감독직이 '독이 든 성배'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한 축구계 관계자는 "축구협회와 대표팀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들끓고 있고, 선수 간 불화설은 2차 진실공방으로까지 이어지는 등 아수라장이 됐는데 누가 이 자리에 가겠느냐"며 "아무리 임시라 해도 득 될 게 하나 없는 자리가 됐다"고 말했다.

K리그 개막을 약 2주 남겨둔 상황에서 홍명보·김기동 등 현역 감독을 대표팀 감독으로 차출할 경우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축구협회 축구국가대표팀 운영규정에 따르면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된 자가 구단에 속해 있을 경우, 소속 구단의 장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에 응해야 한다. 즉, K리그 현역 감독을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해도 절차상 문제는 없다. 다만 이 규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협회가 구단의 허락도 없이 일방적으로 감독을 빼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특히 새 시즌을 코앞에 두고 감독이 자리를 비우는 건 감독에게도, 구단에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축구계 또 다른 관계자는 "지금 현역 감독이 자리를 비우면 해당 팀 전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며 "국가대표 경기도 중요하지만, 1년 내내 농사를 지어야 하는 구단과 팬들의 입장도 고려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축구 팬들도 이날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 "국내 감독 낭비 그만. K리그가 만만하냐"는 문구가 새겨진 근조화환을 보내며 항의 표시를 했다.

앞서 2007년에도 박성화 현 동래초등학교 축구부 감독이 부산 아이파크 감독으로 취임한 지 17일 만에 올림픽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돼 논란을 빚었다. 당시 박 감독은 "내 의지가 아니었다"고 해명했지만, 부산 구단 홈페이지에는 '프로 감독 빼오기'를 반복하는 협회와 무책임한 박 감독의 행태를 비판하는 글이 쏟아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재 임시 대표팀 감독으로 가장 유력한 후보는 이미 올림픽 대표팀을 맡고 있는 황선홍 감독이다. 하지만 황선홍 감독도 파리올림픽 일정에 맞춰 선수들을 소집하고, 관리하려면 시간이 빠듯해 잠시 시간을 벌어주는 정도에 그칠 수밖에 없다. 또 U-23 국가대표팀을 맡아온 만큼 선수단 소집이나 운영 등에서 큰 틀의 전체적인 그림을 보지 못하는 과오를 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김진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