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출퇴근길에 오디오북을 듣고 있다. 장거리 운전 중에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베스트셀러를 오디오북으로 접하면서 그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매우 놀라운 몰입의 경험이었다. 이동 시간이 단순히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다양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귀중한 순간으로 바뀌었다.
정돈된 생각과 검증된 지식을 접하는 데는 역시 책만 한 것이 없다. 오디오북 덕분에 바쁜 일상 속에서도 다양한 책을 '듣는' 것이 가능해졌고, 특히 운동ㆍ운전 등 다른 활동을 하면서도 책을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됐다.
특히 접근성 면에서 단연 돋보인다. 시각 장애인을 포함해 여러 가지 이유로 글자를 읽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쉽게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스마트폰에 다운로드하거나 스트리밍을 하면 언제 어디서든 책을 들을 수 있다. 독서 시간을 따로 내기 어려운 사람들에게도 새로운 문을 열어준다. 공간이 비좁아 책을 펼치고 보기 어려웠던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도 여유 있고 품위 있는 독서가 가능하다.
언어 학습 측면에서도 매우 유용하다. 다양한 언어의 오디오북을 통해 발음을 익히고 언어 감각을 키울 수 있다. 낭독자의 감정 표현과 억양을 통해 책의 내용이 훨씬 더 실제적이고 입체적으로 다가와서, 독서 경험은 한층 더 풍부하게 된다. 외국 영화나 드라마를 더 이상 한국어로 더빙하지 않고 자막을 쓰는 시대에서, 성우들이 새롭고 값진 역할을 해주는 것도 반갑다.
사라져 가는 우리나라의 아름답고 다채로운 방언을 귀로 만나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박경리의 '김약국의 딸들'에는 통영의 사투리가 알알이 박혀 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같은 진입 장벽이 높은 고전이나 '태백산맥' 같은 방대한 분량의 대하소설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도 오디오북의 큰 장점 중 하나다. 고전이란, 누구나 제목은 들어봤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이런 작품들은 종종 부담으로 여겨지지만, 오디오북을 통해 낭독자의 목소리로 생생하게 전달되면서 작품에 대한 이해와 몰입이 가능해진다. 혼자 읽기에는 어렵고 겁이 나는 책들. 하지만 옆에서 짐을 들어주는 친절한 '셰르파'와 함께라면 용기내 볼 수 있다.
등장인물의 미묘한 심리도 낭독자의 해석을 통해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대화나 독백이 많은 책에서 그 장점이 극대화된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이라는 고전에서는 대화를 빙자한 소크라테스의 변설이 끝없이 이어진다. 종이책이었다면 진작 덮었을 부분도 ‘어른이 말하고 있는데 중간에 끊기’가 미안해서 계속 듣게 된다. 소크라테스는 죽을 때까지도, 말이 많은 것이 큰 죄라는 것을 몰랐던 것 같다.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는 것도 중요한 장점 중 하나다. 종이책의 제작과 유통에 필요한 자원과 에너지를 절약함으로써 탄소 중립에도 기여한다. 오디오북은 책을 볼 때 꼭 필요했던 조명조차 필요 없다. 누워서 눈을 감고 듣는 '금강경'의 광대한 평화 속에서는 주가 폭락도 두렵지 않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도처에서 벌어질 때는, 말이 되는 위로를 받기 위해 오디오북을 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