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군에 맞섰던 '서울의 봄' 정선엽 병장, 47년 만에 조선대 졸업

입력
2024.02.16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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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대, 명예졸업식 열고 졸업증서 전달
유족 "다시는 이런 불행한 일 반복 안 돼"

1979년 12·12 군사반란 당시 반란군에 맞서다 숨진 고 정선엽 병장이 47년 만에 모교 졸업장을 받았다. 정 병장은 영화 ‘서울의 봄’에 등장한 조민범 병장의 실존 인물이다.

조선대학교는 16일 광주 동구 교내 서석홀에서 고 정선엽 동문 명예졸업식을 열고, 명예졸업증서를 수여했다. 총동문회도 ‘의로운 동문패’를 전달했다. 이날 행사에는 정 병장의 유가족들인 동생 규상(65)씨와 누나 영임(75)씨 등 300여 명이 참석했다.

김이수 조선대 이사장은 “정선엽 동문이 입학 47년 만에 명예로운 졸업을 하게 됐다”며 “정 동문이 보여준 의지와 용기를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정 병장의 순직 기록을 재조사해 전사로 바로잡은 송기춘 전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장은 추모사를 통해 “바람이 불기도 전에 총을 다 내어준 그 허망한 밤, 정 병장 하나 있어서 위로가 됐다”며 “제대로 대항하지도 않고 총을 내어준 많은 군인들을 부끄럽게 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형의 졸업장을 대신 받은 동생 규상씨는 “너무 늦었지만 이제라도 졸업장을 받고 형 명예가 회복돼 다행”이라며 “다시는 이런 불행한 일이 반복되면 안 된다”고 했다. 졸업장을 한참이나 보던 누나 영임씨는 “선엽이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밝고 착했던 아이”라며 “이제라도 홀가분한 마음으로 하늘에서 잘 지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조선대 전기공학과 77학번인 정 병장은 전역을 3개월 앞둔 1979년 12월 13일 새벽, 육군본부 B2 벙커에서 반란군에 저항하다 숨졌다. 다른 장병들은 투항했지만 그는 “중대장님 지시 없인 절대 총을 넘겨줄 수 없다”며 버티다 총에 맞아 전사했다. 정 병장의 죽음은 신군부에 의해 ‘오인에 의한 총기사고’로 조작됐다. 누나 영임씨는 “당시 신군부가 선엽이를 빨갱이로 몰아 장례식도 제대로 치를 수 없었다”며 “국립묘지도 못 가게 막았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우여곡절 끝에 국립묘지 안장은 이뤄졌지만, 순직으로 처리됐다가 2022년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의 재조사 끝에 전사자로 인정받았다.

정 병장의 명예회복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송기춘 전 위원장은 “군사반란 세력들의 보이지 않는 영향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것 같다”며 “지난해 정 병장의 서울 현충원 묘비 교체 작업이 이뤄졌지만, 반란군에 대항하거나 진압했다는 표현을 쓰지 못하도록 해서 결국 12·12 군사반란 중 전사했다는 표기만 할 수 있었다”고 토로했다. 김준철 김오랑 중령 추모사업회 사무처장은 “정 병장의 무공훈장 추서가 이뤄지길 바란다”며 “다음에는 고인이 전사했던 국방부 B2 벙커 앞에서 추모 행사가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광주= 김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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