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장서 도망쳤지만 봉준호·나영석에 선택받은 배우, 최우식

입력
2024.02.14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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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ㅇ난감' 살인마 역 맡아 
나약함과 광기 잘 버무려 연기 
캐나다 이민 갔다 배우 되려 귀국 
포기하려던 찰나 받은 신인상 
젊은 세대 대변하는 배우로 성장

“더는 교복도 입기 싫었어요. 말 타면서 총 쏘고 싶고, 막 샤워 장면도 찍고 싶고… 예전에는 제 이미지를 그렇게 바꾸고 싶었을 때가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생각이 아예 없어요.”

앳된 얼굴 덕에 20대 후반까지 고등학생 역할을 자주 했던 배우 최우식(33). 한때 학원물에 갇힌 듯한 자신의 이미지를 고민했지만, 이제는 캐릭터보다는 자신이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배역을 선택한다고 했다. 그런 그가 택한 배역은 의외였다. 연쇄살인범 같은 강력범죄자들만 골라 죽이는 살인마. 최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8부작 드라마 ‘살인자ㅇ난감’에서 악인을 감별하는 비범한 능력을 가진 대학생 이탕으로 돌아온 최우식을 14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나약함과 광기 오가는 말간 얼굴의 살인자

말간 얼굴의 살인자 이탕은 학교폭력 피해자이면서도 죄책감 없이 친구의 태블릿PC를 훔치는 가해자이고, 경찰이 잡지 못하는 범죄자들을 단죄하면서도 “너무 무섭다”며 주저앉아서 운다. 나약함과 광기가 끊임없이 교차하는 이 입체적 인물은 말수마저 적어서 최우식은 표정과 몸짓만으로 인물의 혼돈과 번뇌, 죄책감과 타협을 표현해야 했다.

“(이탕을 보면) 나를 보는 것 같다”는 시청자들의 평가가 나오는 것은 선과 악이 복잡하게 얽힌 인간의 내면을 잘 그려냈기 때문이다. 동명의 인기 웹툰을 드라마로 만든 이창희 감독은 살인마에게도 몰입하게 만들 수 있는 배우에 곧바로 최우식을 떠올렸다. 이 감독은 “‘이 사람이 살인을 했다면 살인자의 이야기도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배우”라고 말했다.


젊은 세대의 고통과 욕망 대변하는 배우

배우 최우식의 탄생을 알린 건 저예산 독립영화 ‘거인’(2014)이었다. 영화 ‘기생충’(2019)으로 그를 처음 안 사람들이 많지만, 영화감독들은 보호시설에서 생활하는 열일곱 살 영재를 연기한 그를 눈여겨봤다. '거인'을 본 봉준호 감독은 최우식을 ‘옥자’(2017)에 캐스팅했고, 최우식을 생각하며 ‘기생충’의 기우 역할을 만들었다.

최우식은 ‘거인’ 출연을 두 번이나 거절했다. 2011년 ‘짝패’로 데뷔한 그는 자신보다 먼저 배우로 성장하는 친구들을 보며 자존감이 바닥났고 작품을 잘할 자신도 없었다. ‘거인’ 개봉 후 “이 작품도 안 되면 다른 길을 찾자”고 마음먹은 지 하루 만에 신인배우상을 수상했다. 청룡영화제,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등에서 6개의 신인상을 휩쓸었다.

최우식은 평범한 청년들의 나약함과 결함, 욕망을 그려내는 데 탁월하다. 선명한 연기로 배역에 배우의 그림자를 드리우는 대신 배역 속에 온전히 녹아들어 가는 연기력에 친근한 외모가 더해진 결과다. 봉 감독도 그를 두고 “우리 시대 젊은이들의 모습을 품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우식은 ‘젊은이’에 갇히는 데 대한 고민도 있다. “(젊은 세대를 대변한다는 평가가)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지만, 앞으로 할 연기에 대한 걱정도 많아요. 서른 후반이나 마흔 살에 다른 모습을 잘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있어요.”


"즐기면서 일하고파... 행복해지고 싶어서"

초등학교 5학년 때 가족들과 캐나다로 이민을 간 최우식은 캐나다 명문대인 사이먼 프레이저대에 다니던 중 “한국에서 너 같은 순한 눈매가 유행”이라는 친구의 말을 듣고 배우가 되기 위해 한국에 돌아왔다. 귀국 다음 날 준비 없이 간 오디션장에서 화려한 장기를 뽐내는 다른 지망생들을 보며 도망쳤다. “캐나다에서 왔는데 그래도 한번 해보라”는 오디션 관계자의 말에 용기를 내서 오디션을 봤다가 연기 인생이 시작됐다.

최우식은 영화계에선 봉준호 감독의 페르소나 배우로 꼽히고 예능계에선 나영석 PD가 연출한 ‘서진이네’ ‘윤스테이’ ‘여름방학’ 등에 출연했다. 영화계와 예능계 최고들의 선택을 받고도 유독 불안과 걱정이 많았다는 14년 차 배우는 요즘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고 했다. “요즘에는 즐기면서 일을 하려고 해요. 좀 더 행복해지고 싶어서일까요. 앞으로도 재미있게 즐겁게 연기하고 싶어요.”




남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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