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기물에 새 생명, 업사이클링 전문가

입력
2024.02.14 19:00
25면

편집자주

사회변화, 기술발전 등으로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직업을 소개합니다. 직업은 시대상의 거울인 만큼 새로운 직업을 통해 우리 삶의 변화도 가늠해 보길 기대합니다.

안 입는 옷, 못 입는 옷… 몸살 앓는 지구

어느새 겨울 한파가 아득해지고 백화점엔 봄기운이 완연하다. 뚜렷했던 사계절의 경계가 예전만 못하다고는 하지만 계절이 바뀌는 간절기는 옷 지름신이 강림하는 때이기도 하다. 하지만 옷 구매의 유혹이 계절 탓만은 아니다. 태그도 떼지 않고 고이 모셔둔 바지, 1+1에 홀려 구입하고는 쳐다도 안 본 티셔츠, 언젠가는 살이 빠져 다시 입기를 기대하는 원피스, 그리고 버릴까 말까를 고민만 하다 접어둔 늘어난 운동복까지…

옷장 안 옷은 즐비한데 '입을 옷이 없다'고 체념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은 비단 우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 트렌드이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이면서도 유행에 민감한 옷을 빠르게 회전하여 판매하는 패스트 패션(fast-fashion) 업계의 성장은 더 많은 옷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데 일조하기도 하였다.

한편 몇 해 전 기후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더 이상 새 옷을 사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하였다. 왜일까.

생산과 소비에 가치를 불어넣는 '새활용'

옷의 대량생산은 엄청난 물 소비, 이산화탄소 배출, 아프리카에 거대한 옷 쓰레기 산을 만들고 있다. 옷뿐 아니라 각종 중고용품, 폐기물 그리고 사용하지 않은 새 제품에 이르기까지 원래 용도의 기능을 상실한 제품은 그 자체로 환경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예전엔 폐기물을 재가공하여 다시 활용하는, 즉 플라스틱을 다시 플라스틱으로 활용하는 '리사이클링'이 우세였다면 전 세계적 관심은 폐기물이나 수명을 다한 제품을 전혀 다른 제품이나 용도로 새롭게 탄생시키는 '업사이클링'으로 확장되고 있다.

단순히 기능의 재탄생뿐만 아니라 기업 책임이 녹아든 생산에다 소비자의 인식이 더해져 고부가가치를 낳기도 하는데 이는 업사이클링이 '새활용'으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폐트럭의 방수덮개천이나 차량의 안전벨트로 가방을 만들어 저렴하지 않은 가격임에도 전 세계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세계적 브랜드가 된 프라이탁(Freitag)이 그 예이다.

공예에서부터 도시까지, 업사이클링 영역은 무궁무진

1994년 독일에서 시작된 업사이클링은 영국, 스페인, 미국 등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고 국내에도 2000년대 들어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시작되어 참여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업사이클링 전문가는 사용 가치를 높이고 제품에 새로운 디자인과 기능을 불어넣는다. 업사이클링할 소재에 대한 이해는 물론이고 용도, 최신 트렌드도 반영할 수 있어야 하며 사람들에게 관련 교육을 기획하고 운영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관련 협회에서 디자이너를 비롯해 전문가를 양성하기도 한다.

특히 업사이클링은 비단 패션이나 공예 등을 넘어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 농산물을 식품으로 재탄생시키거나 식품 가공공정에서 추출한 성분으로 또 다른 제품을 생산하는 푸드 업사이클링, 폐관한 극장을 카페로, 제분소를 문화복합단지로 탈바꿈하는 공간 업스타일링에 이르기까지 그 영역의 경계를 허물어 확장되는 추세다.

이에 따라 업사이클링 전문가 역시 작은 공예품을 만드는 디자이너에서부터 신소재공학기술자, 식품연구원, 도시재생기획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직업군이 환경이라는 공통의 가치를 위해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또는 자원순환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을 바꾸고 지속가능한 경제로 남기 위해 업사이클링의 가치를 전파하는 이들도 포함된다. 착한 소비를 한다는 것이 다소 생경하고 귀찮을 수 있으나 미래세대에게 잠시 빌린 지구를 깨끗이 돌려줘야 한다는 다짐으로 '마음의 업사이클링'을 해 보는 건 어떨까.




최영순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