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장도(粧刀)는 자결용이 아니었습니다. 남녀노소가 장신구로 차고 다니며 신분을 나타내는 '잇템(유행하는 물건)'이었죠."
유튜브의 짧은 동영상 서비스 '쇼츠'에서 한 남성이 한국 전통 칼인 '장도'를 속도감 넘치게 설명한다. 영상 제목은 '20초 장도 상식'. 오로지 장도 이야기만 하는 채널의 주인이자 영상의 화자는 국가무형문화재 장도장 이수자 박남중(32)씨. 2년 전 시작한 채널의 구독자는 1만 명을 돌파했고, 누적 조회수는 1,000만 회를 훌쩍 넘는다.
장도 제작 영상에서 박씨는 카리스마 넘치는 장인의 모습이다. 화덕에 불을 피우려 바람을 일으키는 풀무질을 하고 칼에 손수 글자를 새기는 장면을 브이로그(일상 동영상)처럼 편집해 보여준다. 칼날의 소재인 은의 고유한 색을 찾기 위해 모래가 담긴 물을 몇 번이고 들이붓는 '모래맞춤' 작업, 달궈진 강철을 수천~수만 번 두들기는 과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형님, 정말 멋집니다" "태어나서 장도라는 걸 처음 알았어요" 전통공예에 친숙하지 않은 MZ세대(1980년대 초 이후 출생)가 뜨거운 반응을 보낸다.
박씨는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3대째 장도를 만드는 무형유산 가계전승자다. MZ세대 무형문화재는 이전 세대와 무엇이 다를까. "할아버지에게 장도는 생업이었지만 제겐 계승의 의미가 더 커요. 기술을 배우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발전시켜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려 합니다. 장도가 문화재가 아니라 장도를 만드는 '사람'이 문화재잖아요."
전통유산은 '낡은 것'으로 치부되곤 한다. 빠르고, 자극적이고, 역동적인 일을 선호하는 젊은 세대와 과연 어울릴까. 이런 편견을 불식시키고 전통의 세계에 인생을 바치겠다고 나선 MZ세대 무형유산 전승자들이 있다. 인터넷에 능한 이들은 전통을 잇는 동시에 유튜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쇼핑몰 등 디지털 영역에서 새로운 유산을 창출해내고 있다.
현행법은 국가무형문화재 전승자(개인 기준)를 세 단계로 구분한다. 공연, 의술, 의례 등 무형문화재 종목으로 지정된 160가지 기능과 예능을 전형대로 전수받은 최상급의 전승자가 '보유자'다. '인간문화재'로 불린다. 지난 1월 기준 174명으로, 평균 나이는 74.5세이고 60세 이상이 전체의 94.8%에 이른다. 그 아래 단계인 전승교육사의 평균 나이도 63.7세다. '차세대 전승자'로 불리는 이수자는 3년 이상 전승교육을 받고 심사를 통과한 이들로, 비교적 연령 분포가 넓다. 약 7,000명이지만 활발하게 활동하는 건 3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직지1377(jikji1377)'. 서적 인쇄용 활자를 금속으로 만드는 금속활자장 전승교육사 임규헌(32)씨의 인스타그램 아이디다. 인스타그램에서 그는 인플루언서급의 인기를 누린다. 팔로어만 1만2,000명. 나무에 글자를 새긴 어미자를 다듬고 거푸집에 섭씨 1,200도의 쇳물을 붓는 사진에 좋아요 수백 개가 찍힌다. 금요일과 토요일마다 일터인 충북 청주 금속활자전수교육관에서 시민을 대상으로 주조 시연을 하는데, 인스타그램을 보고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단다.
임씨는 수면과 운동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전수교육관에서 금속활자를 연습하고, 만들고, 알리는 데 보낸다. 대학생 때는 금속활자장인 아버지 임인호씨와 함께 5년 동안 휴일을 반납해가며 매달려 직지(直指) 에 쓰인 금속활자 3만 자를 복원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힘들게 일하는 것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절대 이 일만은 안 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일을 도우면서 전통을 지키고 이어가는 일의 매력에 빠졌다. 그는 2022년 최연소로 전승교육사 심사를 통과했는데, 전통기술 종목에서는 유일한 30대 전승교육사다.
"현재의 아름다움도 중요하지만 과거의 아름다움도 못지않다는 것을 알리는 게 제 소명의식이에요. 그래서 모든 시간을 금속활자 전승활동과 기술 연마에 쏟아붓고 있습니다."
대나무를 얇게 저며 염색한 뒤 다채로운 무늬를 넣어 상자 등을 제작하는 채상장 이수자 김승우(34)씨는 올해 고급 채상 브랜드인 '채상장(chaesangjang)'을 내놓을 예정이다. 채상 대중화를 위해 3년 전부터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를 열어 효자손, 김발, 베개, 젓가락 등을 팔고 있지만, 국가무형문화유산의 품격에 걸맞은 브랜딩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최근에는 디자이너와 협업으로 채상 티슈함, 조명을 제작했고, 현대백화점 팝업 매장에서 판매했다. "과거 세대에는 전통공예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허락됐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상품화에 주력하고 있어요. 인터넷을 활용해 판매 채널을 다양화하고 있습니다."
MZ 무형문화재 전승자들의 새로운 시도는 경제적 어려움에서 비롯한 고육지책이기도 하다. 과거 방식을 고수했다가는 입에 풀칠도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전승 활동으로 얻는 수익은 0에 가까워 사실상 판매 수익이 유일한 수입원이다. 박씨는 지난해 인터넷에서 나온 장도 매출 약 200만 원이 수입의 전부이고, 임씨는 의식주를 해결하기 어려워 보유자인 아버지로부터 최저시급을 받고 일하고 있다. 김씨는 "직원 고용을 할 여유가 없다 보니 수련생들이 조금 배우다 떠나버리고 결국 자녀들이 명맥을 잇게 된다"고 설명했다.
문화재청은 지원금을 대폭 늘리며 전승활성화에 사활을 걸고 있다. 지난해 보유자, 전승교육사, 보유단체에 지원되는 전승지원금(월 90만~200만 원, 단체는 380만 원 이상)을 조금 올렸다. 올해부터는 우수이수자 대상 장려금을 신설했다. 취약종목 보유자에게 전수교육을 받으면 전수장학금까지 지급하며 분투하고 있으나, 25개 종목이 올해 들어 취약종목으로 지정되는 등 활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