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달 25일 "한국 도서의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해 78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전년(68억 원) 대비 14.7% 늘어난 규모입니다. 'K북 열풍'이 뜨거운 가운데 정부가 나서 역량 있는 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겠다니, 올해 출판 예산이 무참하게 깎여 침울한 출판계에는 모처럼의 희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현장 분위기는 정반대입니다. 어찌 된 일인지 출판계 대표단체인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는 그간 정부 보조금으로 추진해온 해외 교류사업을 독자적으로 추진하는 방법을 찾느라 애를 먹고 있습니다. 당장 6월로 다가온 '서울국제도서전'은 기금을 모아 정부 지원금 없이 행사를 열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지요. 서울국제도서전(6억7,000만 원)은 물론이고 해외 도서전에 들어갈 30억 원 안팎 예산이 한 건도 집행되지 않아 사업 자체가 불투명해졌습니다.
문체부는 지난해 출협과 갈등을 빚은 서울국제도서전 국고보조금 정산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예산 지원을 중단하고, 다른 해외 도서전도 문화외교 측면을 고려해 정부의 역할을 키우겠다고 합니다. 한 번 더 생각해보면 물음표가 생깁니다. 65년의 역사를 헤아리는 국제도서전에 배정된 예산 집행을 임의로 미루는 것은 칼자루를 쥐고 흔드는 부당한 처사로 보이고, 오랫동안 업계 주도로 꾸려온 해외 도서전을 사전 협의 없이 정부 주도로 바꾸겠다는 것은 민관 거버넌스 흐름에 맞는 것인지 의구심이 듭니다.
올해 줄줄이 예정된 해외 도서전이 민관 두 갈래로 갈릴 때의 혼선과 거기에 들어갈 세금, 사회적 비용을 떠올리면 더 그렇습니다. 오랫동안 해외 교류를 해오며 구축한 국제적 네트워크가 무너지는 것도, 함량 미달과 참여 저조로 예산이 낭비되는 것도 한순간입니다. 그러니 따져 묻게 됩니다. '카르텔 해소'를 운운하는 예산 칼질의 공공성을, '새로운 방식으로 지원하겠다'는 주장의 진위를 말이죠. 하필이면 세계가 주목하는 지금, K출판은 칼날 위에 섰습니다. 어느 쪽으로 미끄러져도 출판계가 입을 내상이 만만치 않아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