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성남시를 상대로 백현동 개발 특혜를 얻어내기 위해 금품을 받고, 부정한 청탁을 넣은 혐의를 받는 '로비스트'가 13일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1심 재판부의 이날 선고는 백현동 의혹에 대한 법원의 첫 판단으로, 이 의혹과 관련한 배임 혐의로 기소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 김옥곤)는 이날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를 받는 김인섭 전 한국하우징기술 대표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하고, 63억여 원을 추징하라고 명령했다. 법원은 "도주 우려가 있다"며 그의 보석을 취소하고 법정구속했다. 재판부는 "사업에 대한 전문성과 노하우 없이 오로지 지방 정치인 및 성남시 공무원과의 친분만을 이용해 인허가와 관련해 적극적으로 알선했다"고 질타했다.
김 전 대표는 2015년 9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백현동 개발 사업 관련 인허가 알선 등 대가로 부동산 개발업체 아시아디벨로퍼 정바울 대표로부터 77억 원가량의 금품과 백현동 공사 현장 식당(함바) 사업권을 수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 대표의 성남시장 재직 중 진행된 백현동 개발 사업은 옛 한국식품연구원 부지에 아파트를 짓는 사업이다. 아시아디벨로퍼 측은 사업 초기 어려움을 겪었지만, 김 전 대표 개입 후 성남시로부터 용도변경 및 4단계 용도 상향(자연녹지지역준주거지역) 승인을 받아내면서 사업을 빠르게 진행할 수 있었다. 검찰은 김 전 대표가 성남시 업무를 총괄하던 정진상 전 민주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을 상대로 알선, 청탁을 한 것으로 봤다.
재판부는 혐의 대부분을 유죄로 인정했다. 김 전 대표가 수수한 74억5,000만 원과 함바식당 사업권을 알선대가로 인정했다. 다만, 김 전 대표가 받은 금액 중 2억5,000만 원은 차용증을 작성한 점에 비출 때 대여금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보고 알선대가로 판단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정바울로부터 사업의 용도지역 변경, 주거 용지 비율 확대, 신속한 지구단위계획 추진 및 성남도시개발공사의 사업 참여 배제에 관해 성남시 공무원에게 부탁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봤다. 이후 김 전 대표가 정 전 실장에게 여러 차례 '나와 정바울의 뜻대로 처리해 달라'고 말한 사실도 인정했다. "정바울 대표와 동업관계였다"는 김 전 대표 측 주장은 "김 전 대표의 역할은 오로지 성남시 공무원에 대한 알선, 청탁이었다"며 물리쳤다.
법원은 이날 백현동 의혹 관련 첫 판단을 내리면서 이 대표의 개입 여부는 구체적으로 거론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인(김 전 대표)의 알선이 부정한 것인지, 성남시의 용도지역변경 등이 위법한 것인지, 피고인의 알선으로 성남시 용도지역변경 등이 이뤄진 것인지 등과 관계 없이 알선수재죄는 성립한다"고 설명했다. 성남시 안에서 윗선으로 보고됐는지, 성남시청이 실제 부당한 일처리를 했는지를 볼 필요도 없이 김 전 대표의 행위만으로 범죄가 성립한다는 얘기다.
다만, 선고 과정에서 이 대표의 최측근 정 전 실장이 김 전 대표의 로비를 받거나 실무자들에게 지시한 정황 등이 다수 인정된 점은 다른 재판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이 대표와 정 전 실장은 백현동 부지의 용도 변경을 승인해 성남도시개발공사에 200억 원 상당의 손해를 끼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의 공범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재판부는 김 전 대표가 2005년 정계에 입문한 이 대표와 친분을 쌓고 여러 차례 선거를 지원했다는 점을 인정했고, 그가 정 전 실장에게 두터운 신뢰를 얻었다는 점도 받아들였다. 이 역시 김 전 대표가 이 대표 및 정 전 실장의 '정치적 동반자'라 보는 검찰 시각을 뒷받침한다.
정 전 실장 측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김 전 대표에게 청탁 받은 사실이 없고 청탁을 제3자에게 전달한 사실이 없으며 재판에서 무고함을 밝힐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