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생성형 AI 스타트업인 뤼튼테크놀로지스(이하 뤼튼)는 지난해 오픈AI의 GPT 시리즈, 네이버의 하이퍼클로바, 구글의 PaLM2 등 국내외 거대언어모델(LLM) 5종을 10가지 평가지표로 평가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최근 유행하는 마이어스-브릭스 성격유형검사(MBTI)처럼 인공지능(AI) 모델의 명확성, 공감능력, 정중함, 일관성 등을 평가한 것이다. 그 결과 GPT-4는 적절성과 대화 참여도에서 높은 성능을 보였고, 하이퍼클로바는 완결성이 더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연구가 진행된 것은 2022년 11월 말 오픈AI의 생성형 AI 서비스 '챗GPT'의 등장 이후 국내외 빅테크(대형 기술기업)들이 서로 다른 AI 모델들을 앞다퉈 내놨기 때문이다. 사용자 입장에선 과거에 여러 검색 포털을 입맛에 맞게 썼던 것처럼, AI 모델을 쇼핑하듯 골라 쓸 수 있게 된 셈이다. 뤼튼은 여러 모델을 조합해 사용자에게 최적화한 AI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른바 'LLM 큐레이션' 기술이다. 박민준 뤼튼 AI 수석연구리드는 "이 같은 큐레이션 서비스가 가능하려면 전문가 한 명만으론 어렵다. 150만여 명의 사용자에게 문제없이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데이터 엔지니어, AI 엔지니어, 챗봇에 특화한 엔지니어, 멀티모달1 전문가 등 다양한 층위의 전문가들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자체적인 생성형 AI 파운데이션 모델(광범위한 데이터를 학습한 기계학습 모델)을 보유하지 않은 기업들에선 AI 활용에 특화한 전문가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특히 높은 수준의 기술력을 갖춘 스타트업들 사이에서 이 같은 흐름이 뚜렷하다. AI 등장 초기에는 업계에 일반적인 프로그래머나 엔지니어가 대다수였는데, 이들의 업무가 점차 세분화·전문화하고 있는 것이다.
뤼튼의 현지웅(28) 연구원은 사내에서 '검색 증강 생성'(RAG) 기술 구현을 맡고 있다. RAG 기술은 데이터를 학습한 범위 내에서 한정된 답만 내놓는 AI의 맹점을 채우기 위해 질문에 답하기 전 외부 데이터베이스를 실시간으로 검색할 수 있도록 하는 AI 보강 기술이다. 현 연구원은 "단순 검색이 아니라 사용자의 요구와 맥락을 추론해 검색 전략을 세우고 적절한 검색 결과 제공 방법을 찾아 사용자 경험을 극대화하는 게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특정 분야 데이터를 학습시키고 AI 모델을 훈련시키는 '도메인 프롬프트 엔지니어'도 'AI 춘추전국시대'에 주목받는다. AI 모델에서 결과물을 얻기 위해 입력하는 내용을 '프롬프트'라 하고, 원하는 결과가 나오도록 프롬프트에 공을 들이고 최적화하는 사람을 프롬프트 엔지니어라고 부른다. AI 등장과 함께 각광받았던 프롬프트 엔지니어가 이젠 영역별로 분화하는 중이다.
법률과 기술을 융합한 리걸테크 스타트업 BHSN의 이성진(25), 김윤기(23) AI 엔지니어는 법률에 특화한 도메인 프롬프트 엔지니어다. 이 엔지니어는 "간단히 말해 초·중·고교를 졸업해 기반 지식만 있는 AI를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보내고 실무 지식까지 교육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비유했다. BHSN의 AI 모델은 판례, 법령, 행정규칙 등 다양한 법률 데이터를 학습해 법률 특화 언어 이해력이 높고 정확한 답변을 생성한다.
무조건 대량의 법률 정보를 학습시킨다고 해서 법률 특화 AI 모델이 탄생하는 것은 아니다. 김 엔지니어는 "데이터만 학습시킨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프리 트레이닝(사전 기반지식 학습)과 파인 튜닝(학습된 모델을 전문 영역에 맞춰 조정) 과정까지 거쳐야 한다"면서 "이젠 이런 과정을 직접 겪어보고 해당 AI 모델을 제일 잘 이해하면서 성능까지 평가할 수 있어야 전문가"라고 강조했다. 김 엔지니어는 "AI 모델 학습 과정에서 사내 법률가들과 협업했을 뿐 아니라, 직접 법제처나 공정거래위원회 등이 공개한 공공 법률 데이터들을 습득하려고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선 AI 모델이 발전할수록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기술의 중요성이 낮아진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들은 그러나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김 엔지니어는 "AI 성능이 아무리 고도화해도, AI가 무슨 일을 할지 정의하는 사람은 결국 프롬프트 엔지니어"라고 말했다. 이 엔지니어도 "이제는 AI 정확도가 아무리 높아도 수익화로 직결되지 않으면 가치를 인정받기 어려워졌다"면서 "당면한 문제를 푸는 데 AI 기술을 적용할 줄 알고, 비용까지 절감할 수 있는 엔지니어들이 결국 살아남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