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해 사용하지 못한 예산이 46조 원에 육박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전년보다 3배 이상 늘어난 것이며, 전체 예산 540조 원 중 8.5%나 된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기업과 가계의 극심한 위축 속에 1.4%까지 추락했다. 여기에 정부 예산 집행마저 부진하며, 정부 소비 증가율 역시 2022년 4.0%에서 지난해 1.3%로 떨어졌다. 정부가 경기침체에 적극 대응은커녕 주어진 예산 집행도 제대로 못 하면서, 경기 침체를 더욱 부채질한 것이다.
나라 살림을 책임지는 기획재정부는 이 같은 지적을 의식해, 사상 최대의 불용 예산을 최악의 세수 펑크 탓으로 돌렸다. 극심한 경기 침체로 지난해 초부터 세수가 덜 걷히자, 예산 일부를 쓰지 않는 방식으로 지출을 줄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결산상 불용액’을 제외한 ‘사실상 불용’은 10조8,000억 원으로 줄어든다. 하지만 사실상 불용도 역시 사상 최대다.
기재부는 지난해 초반부터 세수 펑크를 예상하고 그 대책을 준비했다. 이럴 때 보통은 세수가 예상보다 부족하면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해 지출을 줄이거나, 적자 국채를 발행한다. 하지만 정부는 추경을 외면하고 불용 예산 활용 카드를 꺼내 들었다. 당시 “세수 부족을 불용으로 대응하면 경기침체가 더욱 악화할 수 있다”는 경고가 이어졌지만, 추경호 당시 경제부총리는 “집행 효율화 차원에서 대응할 수 있다”고 했다. 환율 안정 목적으로 유지하는 ‘외국환평형기금’ 보유 원화 등 9조6,000억 원 규모 재원도 동원했다. 그럼에도 1%대 경제성장률과 사상 최대 불용 예산이란 최악의 성적표로 지난해 나라 살림을 마무리한 것이다.
다행히 올해는 지난해보다 수출 여건이 호전될 것이란 전망이지만, 과도한 부채를 짊어진 민간 부문 회복은 단기간에 기대하기 어렵다. 정부의 적극적 역할이 여전히 중요하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세수 대책 없이 연일 감세정책을 내놓고 있다. 재정이 이렇게 정치에 휘둘린 적이 또 있었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