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신년 방송 대담에서 KBS 역할은 막중했다. 수백 명 기자들에게 질문 기회가 주어지는 기자회견 대신 앵커 1명에게만 질문권이 주어진 대담이었으니 무거운 소명의식을 갖는 게 당연했다. 비록 대통령실이 KBS를 택한 것이라지만,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스스로 입증해 보여야 했다.
그러나 그제 방송된 대담에서 윤 대통령이 하고 싶은 말만 했다는 비판을 받는 데는 질문의 책임도 컸다. 물가 관리로 시작된 질문은 온라인 대출 갈아타기, 의대 정원 확충, 늘봄학교,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개식용금지법 등으로 이어졌다. 정부가 공들여 온 정책을 적극 홍보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짜인 각본’ 같은 질문이 상당수였다.
정작 국민들이 꼭 듣고 싶어 하는 민감한 질문은 없었다. 초미의 관심이었던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논란’과 관련, 곧바로 돌려주지 않은 이유나 관련 기록 존재 여부 등은 묻지 않았다. ‘아쉽다’는 윤 대통령의 표현에 기자회견이라면 당연히 뒤따랐어야 할 ‘사과나 유감을 표명할 뜻은 없느냐’는 등의 후속 질문도 없었다. 특히 앵커가 ‘파우치’ ‘외국 회사의 조그마한 백’으로 표현한 것을 두고 “명품백을 명품백이라 부르지 못하더라”는 야당의 비판이 쏟아진다.
이뿐이 아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의 소통 문제를 다루면서도 정작 갈등의 단초가 된 사퇴 요구가 실제 있었는지, 이유는 뭔지 묻지 않았다. 윤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 당시 수사했던 ‘사법 농단’ 사건 1심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47개 혐의에 대해 모조리 무죄를 받은 것은 물론이고, 이태원 참사나 부산엑스포 유치 참패 등도 질문하지 않았다.
대통령실은 사전 질문지를 요구하지 않았고, 즉석에서 문답이 이뤄졌음을 거듭 강조해 왔다. 사실이라면, 앵커는 후속 질문까지 한 개식용금지법이 이런 사안들보다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는 얘기인가. 박민 사장은 지난해 11월 취임 기자회견에서 “공정성과 신뢰도 확보를 경영 최우선 가치로 삼겠다”고 했다. 이번 대담이 그 약속에 부합한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