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급 기준 비공개"...최대 실적에도 LG엔솔 직원들은 왜 트럭 시위 나섰나

입력
2024.02.1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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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에너지솔루션 ‘트럭 시위’ 직원들 인터뷰
"일부 경영진 가벼운 태도로 상황 모면하려 해"


경영진이 성의 없이 상황만 모면하려는 걸 보고 많은 직원이 가만있으면 안 되겠다고 마음먹었죠.
LG에너지솔루션 '트럭 시위' 참가 직원 A씨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9호선 국회의사당역 4번 출구 앞. 3.5톤(t) 트럭이 세워져 있고 짐칸에 얹어진 전광판에 '성과보상 공정하게' 등의 메시지가 나타났다. 길을 지나던 시민들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메시지를 읽어내려 갔다. 이 트럭은 LG에너지솔루션 일부 직원들이 올해 절반 넘게 줄어든 성과급에 대한 해명과 성과급 제도 개선 등을 경영진에 요구하기 위해 마련한 것이다.

최근 게이머들이 일부 게임회사들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트럭이나 마차를 통해 시위를 벌이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대기업 직원들이 트럭으로 회사에 요구 사항을 전달하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다.

독특한 시위 방식을 택한 이유를 묻자 직원 A씨는 "회사가 성과급을 축소하고도 납득할 만한 설명 없이 다음 날 해당 금액을 입금해 직원들을 자극했다"며 "직원들이 반발하자 경영진이 타운홀 미팅을 열었지만 제대로 된 설명 없이 가벼운 태도로 상황을 모면하려고 해 불난 집에 기름을 부었다"고 말했다.

김동명 사장은 2일 "사안이 급박해 경영진이 제대로 준비를 못했다"며 "3월까지 구체적인 성과급 체계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은 익명 단체 채팅방을 만들어 대응 방안을 논의했고 트럭 시위와 모금을 진행했다.

직원 B씨는 "일부 경영진의 무성의한 태도에 결정적으로 분노한 것"이라며 "1,700명 가량이 모금에 참여했고 익명 단체 채팅방에는 약 1,400명이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회사는 여전히 유감이라는 공식 입장만 되풀이하고 일부 임원진은 직원들이 궁금해 하는 것을 불성실하게 대답하며 제대로 된 해결 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고 답답해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매출 33조7,000억 원, 영업이익 2조1,000억 원을 기록해 사상 최대 실적을 냈지만 전기차 시장 성장세 둔화 등을 이유로 직원들의 성과급을 크게 줄였다. 올해 성과급은 기본급의 340∼380%, 평균 362%로 책정됐는데 지난해(기본급의 870%)의 절반이 되지 않는다. 회사 측은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첨단제조 생산 세액공제(AMPC)를 이익에서 빼 성과급이 낮아졌다고 설명했다. AMPC는 기업이 미국 내에서 친환경 제품을 만들면 미국 정부가 지급하는 보조금이다.

회사 측은 AMPC는 변동성이 큰 점을 고려해 성과 지표에 반영하지 않기로 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직원들은 AMPC를 올해 성과에 넣고 성과급 산출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회사가 목표치를 정한 뒤 이를 달성하면 성과급을 지급하는 현행 방식이 아니라 재무제표를 기준으로 이익금의 일정 규모를 성과급의 재원으로 설정하는 이익 공유제(Profit Sharing) 방식을 도입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직원들은 29일까지 트럭 시위를 이어갈 계획이다. 회사는 3월 4일 타운홀 미팅에서 성과급 개선안을 밝힐 예정이다. 회사 관계자는 "성과급 체계 개선을 약속했는데 같은 내용을 익명 트럭 집회로 또다시 요구하는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LG이노텍 등 다른 계열사 직원들도 "불만 크다"


시위 참가 직원들은 LG그룹의 다른 계열사로 번질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B씨는 "LG이노텍 직원들도 LG에너지솔루션 익명 채팅방에서 시위 참여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며 "각 계열사나 지주사의 대응에 따라 연대 가능성도 열어놓고 있다"고 말했다. A씨도 "예전부터 LG그룹의 성과체계가 다른 기업과 비교해 박하다는 내부 불만이 있었다"며 "그룹 전체로 확산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은 "구성원이 사측에 갖는 불만을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이 파업 외에도 트럭 시위처럼 다양해지는 것은 긍정적 현상"이라며 "다만 기업 입장에서는 이에 응할 법적 의무가 없기 때문에 공식 지위를 갖는 노사 협의체나 노동조합과 힘을 모으는 것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희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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