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半)수생용 야간반을 만들지 말지 치열하게 논의 중입니다.”
서울의 한 대형 입시학원은 요즘 고민에 빠졌다. 학령인구 감소로 수년간 수강생이 줄어 강좌를 크게 늘리지 못했지만, 의대 정원이 확 증가하면서 달라진 입시 판도에 맞춘 새로운 형식의 강의를 개설해야 한다는 내부 목소리가 많아진 것이다. 의대 증원 논의가 본격화한 올해 들어 반수(학교를 다니며 재수 준비)나 재수를 하겠다는 문의가 쇄도하더니, 정원 확대 규모가 확정된 6일부터 신규 수강생도 실제 늘고 있다. 학원 관계자는 "학업을 병행하는 대학생이나 돈을 벌면서 의대를 준비하는 직장인을 감안해 야간반을 도입하자는 내부 제안이 힘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2025학년도 대입부터 의대 입학 정원을 2,000명 늘리기로 하면서 'N수 러시'가 현실로 나타날 조짐이다. 학원가엔 이미 의대 재수 관련 문의가 폭주하고,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의대 진학, 혹은 재진학에 관심을 보이는 이들의 게시글이 빗발치고 있다.
7일 여러 서울 상위권 대학 커뮤니티에서는 '의대 진학' 관련 내용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고려대와 서강대 커뮤니티에는 “수능특강(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감수한 수능연계 교재)을 사러 간다” “휴학계를 내고 2년만 도전해 보려 한다” 등의 글이 줄을 이었다. 수험생이 많이 모이는 온라인 토론방도 “지방 의대에 합격했는데, 인(in) 서울 의대 진학을 위해 반수가 어떻겠느냐” 등 고민을 토로하고 답하는 내용으로 넘쳐났다.
매년 의대생 2,000명을 더 뽑겠다는 정부 방침은 졸업생들의 가슴에도 불을 질렀다. 서울대 익명 커뮤니티에서 본인을 2000년대 학번이라고 소개한 한 졸업생은 “의대에 재도전하고 싶은데 요즘은 내신 점수를 어떻게 계산하느냐”고 묻기도 했다. 연세대를 졸업한 2년 차 개발자 강모(28)씨는 “의사가 고수익 전문직이고 (증원으로) 기회도 늘었으니 일단 시작해 보려 한다”면서 “이번 주말에 평가원 모의고사 문제를 풀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던 A(25)씨도 “취업도 막막하고 전문직만이 답이란 생각이 들어 수능 온라인 강의를 둘러보고 있다”고 전했다.
입시 변화를 가장 빨리 체감하는 곳은 역시 학원가다. 입시학원 관계자들은 의대 진학 열풍이 올 초 이미 시작됐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해 정부가 킬러(초고난도) 문제 배제에 이어 의대 정원 확대 방침을 굳히면서 대학생, 직장인들의 상담 요청이 껑충 뛰었다는 것이다. 남윤곤 메가스터디 입시전략연구소장은 “취직 두 달 차인 서울대 졸업생, 4년 차 현직 초등학교 교사 등 의대 재수를 희망하는 문의가 계속 들어오고 있다”며 “승산이 없다고 솔직히 말해도 기회로 여기는 이들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입시 전문가들은 ‘도피성 수험’을 경고한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대학별 청사진도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의대 증원만 보고 뛰어드는 건 섣부른 선택”이라며 “게다가 통합수능도 2027년에 끝나는 등 (일과 공부를 병행하며) 중·장기적인 계획을 짜고 움직이면 현역 수험생과의 경쟁력에서 밀릴 수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