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도둑맞은 부처님·스님들 사리와 사리탑, 미국서 돌아온다

입력
2024.02.06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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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조계종, 美 보스턴미술관과 '사리' 반환 합의
14세기 고려 불교미술 정점 사리탑은 '임시 대여' 형태로

일제강점기에 반출된 14세기 고려 선사(禪師)의 사리가 미국 보스턴미술관에서 귀환한다. 2004년 시민단체와 교계가 반환운동을 시작한 지 20년 만이다. 사리를 담은 사리구는 영구반환되지 못한 채 임시 대여 형태로 돌아온다.

문화재청과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은 6일 "보스턴미술관이 소장한 '은제도금라마탑형 사리구'는 일정 기간 임시 대여하는 방안을 조속히 추진하고, 사리는 사리구와 별개로 불교의 성물로 조계종이 기증받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리는 올해 부처님오신날(음력 4월 8일·양력 5월 15일) 이전에 돌려받고, 사리구의 대여 기간과 방법은 추가 협의를 통해 결정된다. 사리구 임시 대여 기간 동안 문화재청은 보존처리를 통해 학술연구를 지원하고 국민들에게 사리구를 공개한다.

14세기 고려 불교문화 정수 담은 불교 공예품

14세기 전후로 등장한 라마탑(티베트 지역 불탑) 양식의 모양을 한 사리구는 라마교의 영향을 받은 당시 고려 불교문화를 보여주는 정수로 평가된다. 높이 22.2㎝, 밑지름 12.1㎝의 사리구 내부에는 높이 5㎝, 밑지름 3㎝의 소형 사리탑 '은제도금팔각당형 사리구' 5기가 봉안돼 있다. 한국엔 국립중앙박물관과 호암미술관에만 전해질 정도로 라마탑 형태 사리구는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해당 사리구는 개성 화장사 혹은 경기 양주 회암사에 봉안됐다가 일제강점기 도굴꾼에 의해 일본으로 반출돼 보스턴미술관이 1939년 골동품상으로부터 사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스턴미술관은 지공 선사가 창건했다는 회암사를 원소장처로 본다.

탑신에 새겨진 명문에 근거해 안치된 사리를 정확히 알 수 있어 학술적 가치도 충분하다. 사리는 불교에서 참된 수행의 결과로 생겨난다고 여기는 구슬 모양의 유골을 뜻한다. 명문에 따르면 각각 석가모니불 5과, 가섭불(석가모니 이전에 출현한 칠불 중 여섯 번째의 부처) 2과, 정광불(석가모니에게 미래에 성불하리라고 예언하였다는 부처) 2과, 지공(?~1363) 선사 5과, 나옹(1320∼1376) 선사 5과의 사리가 담겨있었으나, 석가모니불 1과, 지공 선사 1과, 나옹 선사 2과 등 총 4과만 남아있다.

지공 선사와 나옹 선사는 고려 말기 '생불'이라 불렸던 불교계의 큰스님이다. 국내에 부처님 진신사리(眞身舍利) 봉안처는 경남 양산 통도사, 강원 오대산 상원사, 설악산 봉정암, 영월 사자산 법흥사, 태백산 정암사 등 다섯 곳뿐이다. 사리 반환이 교계에 경사인 이유다. 조계종 문화부장 혜공스님은 "부처님과 선사들의 진신사리는 불교의 성물이자 존귀한 예경의 대상으로, 환지본처(還至本處·'본래의 처소로 돌아온다'는 뜻의 금강경 구절)의 의미를 새기며 사리를 최대한 존중하여 여법하게 모실 것"이라 말했다.

15년 협상 결실... 사리구 뺀 반환에 '반쪽짜리' 평가도

사리구의 존재는 2004년 혜문 스님이 소장 사실을 확인한 뒤 시민단체 문화재제자리찾기, 조계종 중앙신도회 중심으로 환수운동을 벌이면서 알려졌다. 문화재청은 2009년 보스턴미술관과 직접 협상을 시작했지만 사리만 줄 수 있다는 답변에 따라 2013년 이후 논의가 중단됐다. 지난해 4월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에 동행해 미술관을 찾은 김건희 여사가 반환 논의를 제안한 것을 계기로 최근 협의가 재개됐다.

15년 만에 맺은 결실이지만, 사리구를 영구 반환받을 수 있을지는 미완의 과제로 남았다. 미술사적 관점에서 당대 시대상을 반영한 불교 예술품이기에 전문가들은 지속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신숙 한국전통문화대 무형유산학과 교수(사리기 전공)는 "원 간섭기의 라마탑 사리기는 남아있는 자료가 거의 없고 국내에 전시된 적도 없다"며 "국민들이 14세기 대표하는 불교 공예품을 직접 볼 수 있는 것은 매우 귀한 기회가 될 것이므로, 이번 첫걸음을 계기로 논의를 진전시켜야 한다"고 평가했다. 2009년 당시 조계종 중앙신도회 사무총장으로 과거 협상에 관여했던 이상근 문화유산회복재단 이사장은 "반환되는 사리는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고려까지 부처님 정법이 이어졌다는 불교 역사의 증거"라면서 "역사를 모두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사리)만 돌아오는 것이 관은 빼고 시신만 돌려보내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혜미 기자
조태성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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