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살인의 목격자였다. 마약범죄에 대한 내사 착수가 언론에 흘러나왔다. 석 달 가까이 경찰 조사를 받았고, 세 번의 공개 소환과 마약 간이 검사와 정밀 검사 모두 받았다. 하지만 증거는 없었다. 언론사와 경찰 그리고 유튜버들이 각자만의 명분으로 그를 벼랑 끝까지 몰고 갔다. 사회적 살인이다.
유명인이라는 이유로 그의 권리는 짓밟혔다. 구둣발의 주인 중에는 공영방송과 경찰이 있었다. 공영방송은 사적 대화를 포함한 통화 내용을 녹취록 형태로 보도했고, 허위 유언장도 보도됐다. 그의 죽음 이후 해당 언론사들은 입을 닫았다.
경찰은 언론사와 유튜버를 탓했다. 녹취록은 돌아다니는데 흘린 경찰은 없다고 한다. 내사 착수 사실은 지라시로 돌아다녔는데도 책임이 없다고 한다. 경찰 내부에 위장 잠입한 기자라도 있는 걸까? 피의자의 권리가 뭉개졌는데 뭉갠 사람은 없고, 알 권리라는 명분으로 기사를 쓴 회사는 있지만 오보의 책임을 질 곳은 없다. 녹취록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았고, 보도는 귀신이 쓴 게 아닌데 말이다.
뻔뻔한 남 탓에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언론사와 경찰이 악한 게 아니다. 인간 본성이 문제다. 사람들은 결과의 원인을 추론할 때 외부와 내부로 구분한다. 내가 이해하기 어렵고 부정적인 결과를 설명할 때는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다. 반면 설명하기 쉽고 내게 긍정적인 결과를 분석할 때는 원인을 내부에서 찾는다. 심리학, 사회학, 미디어학에서 말하는 귀인 이론이다.
남 탓은 면피를 위해서다. 하지만 입에만 달 뿐, 몸에 나쁘다. 발전을 막기 때문이다. 외부로 책임을 돌리다보면 단점을 보완하기도 어렵고 역량을 발전하기도 어렵다. 대가들은 결과에 대해 환경을 탓하지 않았다. 자신의 실력 부족에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남 탓의 계절이 왔다. 바로 총선이다. 유권자들은 당장의 생존이 힘든데, 여야 정치인들은 구체적인 계획 없이 그저 서로를 경제 불황의 원흉으로 꼽는 원색적인 비난만 하고 있다. 여당과 정부는 아직도 지난 정권을 탓한다. 연금개혁안부터 전산망 마비까지 말이다. 야당도 다르지 않다. 나라가 위기라고 하는데, 대책 마련보다 서로 고함 치기에 바쁘다.
한국 사회의 문제는 단순히 누구 하나만의 잘못이라 말하기 어렵다. 저출생은 이번 정권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십 년 동안 누구 하나 제대로 해결하려 들지 않았다. 지역 소멸도 마찬가지다. 지방과 수도권의 격차가 한국 사회의 문제라는 사실은 1990년생들의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적혀 있었다. 누구 하나 큰 결단을 내리지 않았다.
남 탓 금지법이 생기면 좋겠다. 남 탓 한 번 하려면 그 전에 자기 탓을 세 번 하는 법이다. 아예 국회에 들어올 때 남 탓 금지를 복창하고 들어가면 어떨까 싶다. 이보다 더 실효성 있는 방안이 있다. 남 탓 정치인 안 뽑기다. 남 탓 하는 정치인은 리더가 되면 안 된다. 반성하고 발전하는 정치인이 리더가 되어야 한다. 그럴싸한 슬로건이 아니라 구체적인 반성과 발전적인 미래 계획을 말하는 사람만이 자격이 있다.
더 이상 목격자가 되지 말자. 대신 응징자가 되어보자. 이번엔 남 탓에 흔들리지 말자. 남 탓 말고 내 탓이라는 리더를 뽑자. 모든 것이 무능한 정치권 때문이라고 남 탓 하는 반성 없는 유권자가 되기 싫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