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내 대형 증권사 5곳의 브라질 국채 판매액은 1조6,299억 원에 달했다. 10% 안팎 이자 수익을 얻을 수 있는 해당 국채로 개미와 기관투자가들의 자금이 몰린 것이다. 이 같은 모습을 보면서 10여 년 전 기억이 떠올랐다.
필자가 한 은행의 이코노미스트로 재직하던 시절, 가장 인기 있는 금융상품은 단연 브라질 국채였다. 10%에 달하는 높은 이자와 브라질 헤알화의 강세 덕분에 인기가 폭발했다. 브라질 정부가 나서 자국 채권을 매입하는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고율의 세금을 부과할 정도였다. 너무 많은 달러가 브라질로 쏟아져 들어오는 걸 막기 위한 조치였지만, 헤알화 가치의 상승을 억제할 순 없었다.
그러나 영광의 시간은 너무 짧았다. 2012년을 기점으로 헤알화 환율이 급등하는 가운데, 브라질 국채의 원화 표시 가격은 폭락했기 때문이다. 아래 <그림>은 달러에 대한 헤알화 환율을 보여주는데, 2012~2021년 사이에 환율이 3배 이상 뛰어오른 것을 볼 수 있다. 달러 가치가 급등했다는 건 반대로 헤알화 가치가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얘기다. 만일 2012년 브라질 헤알화 채권에 투자했다면 70% 이상의 환평가 손실을 입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브라질 헤알화 환율이 급등한 원인은 무엇일까.
이 의문을 푸는 열쇠는 노동생산성 차이에 있다. 노동생산성은 노동시간당 얼마나 많은 생산물을 만들어 냈는지 측정한 수치다. 예를 들어 처음엔 5분짜리 동영상 한 편을 편집해 유튜브에 올리는데 8시간 걸리던 사람이 숙련도가 쌓여 4시간 만에 동영상을 올릴 수 있게 됐다고 가정해보자. 2배 개선된 노동생산성에 따라 이 사람의 소득도 크게 증가할 것이다. 동일한 시간에 두 편의 동영상을 편집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자신이 만든 동영상 외에 다른 동영상 편집 주문을 받고 더 나아가 동영상 품질까지 이전보다 좋아진다면 그의 소득은 세 배, 그 이상으로 늘어날지도 모른다.
이 사례에서 본 것처럼 어떤 사람이 이전보다 더 많은 소득을 올리려면 생산효율 향상이 필수적이다. 최근 생성형 인공지능(AI) 붐이 불어 닥친 것도 생산성을 극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는 기대가 반영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기업이나 나라의 미래를 좌우하는 것은 생산성 향상이며 생산성 향상이 지속적으로 뒤처지는 나라는 여러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아래 <그림>은 2001년 이후 미국과 브라질의 노동생산성 증가율이 표시돼 있다. 2010년을 전후해 브라질 경제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2024년 기준 브라질의 1인당 국민소득은 1만 달러 초반으로, 미국의 8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그런데 노동생산성 향상 속도는 미국이 브라질보다 더 빠르니 두 나라 간의 경쟁력 격차가 벌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비유하자면 학교에서 공부를 가장 잘하는 학생이 도서관에서 계속 공부하는 반면, 중간 순위 학생은 체험수업을 떠난 것과 같은 모양새다.
2010년을 전후로 브라질의 생산성 향상 속도가 둔화된 이유는 여럿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원인은 국제 원자재 가격의 하락에 있다. 올해 기준 브라질의 수출 1위 품목은 원유다. 2위는 식물성 기름, 3위는 철광석이다. 상위 10위 수출 품목 중 원자재가 아닌 건 철강과 보일러, 일반 차량 정도에 불과하다. 국내총생산(GDP) 규모로는 세계 10위 안에 들어가지만, 실상은 광업과 농업에 특화된 나라인 셈이다. 문제는 커피나 원유 같은 원자재 가격의 변동성이 대단히 격렬하다는 데 있다. 당장 국제유가만 해도 2014년 초 배럴당 100달러에서 2016년 30달러 밑으로 내려간 적 있다.
물론 농업과 원자재 산업 비중이 높다고 해서 꾸준한 생산성 향상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미국도 수평수압파쇄법이란 신기술을 도입해 석유 생산량을 비약적으로 높이는 데 성공했다. 최근에는 기름을 뽑아내는 시추관 길이를 3㎞까지 늘리는 등 기술혁신도 끊임없이 하고 있다. 브라질도 석유생산량 증가를 위해 노력하는 중이나, 주력 유정이 대서양 심해 7,000m에 위치해 있다 보니 시원한 생산성 향상을 기록하진 못하는 것 같다.
생산성 격차가 점점 확대되면 국가경제 차원에선 경상수지가 제일 먼저 영향을 받는다. 아래 <그림>은 브라질의 GDP 대비 경상수지 비율을 나타낸다. 2000년대 중반을 제외하곤 지속적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생산성 향상 속도가 빠른 나라가 더 좋은 품질의 제품을 값싸게 팔 가능성이 높다는 건 자명한 이치다. 그 결과 브라질은 원유 등 주요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지 않는 한 만성적인 적자에 놓일 수밖에 없게 됐다.
경상적자로 달러가 해외로 유출되는 상황에서 브라질 정부가 할 수 있는 선택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환율을 조정해 경쟁력 열위에 처한 기업들을 도와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생산성 향상을 촉진하는 다양한 대책을 시행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독자들이 눈치챈 것처럼 첫 번째 대안은 쉽다. 두 번째 방법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성과가 있을 거란 보장도 없다.
생산성 향상을 촉진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가 있는데, 시장을 개방해 경쟁을 유발하고 교육 재원을 늘려 학업 수준을 향상시키며 기업의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하는 것이다. 세 가지 면에서 아직 브라질은 갈 길이 멀다. 주요 국가 중에서 내수시장이 가장 폐쇄적인 편에 속하며,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브라질 학생들은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더 나아가 2020년 기준으로 브라질의 GDP 대비 연구개발비 투자는 1.14%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이 GDP 대비 2.72%, 한국이 4.93%를 지출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하지 않은 규모다.
이제 처음 질문에 답할 때가 된 것 같다.
브라질 헤알화 가치가 2012년 이후 급락한 건 만성적인 경상적자로 부족한 외화를 해외에서 빌려 오는 구조를 가지게 됐기 때문이다. 이 같은 경상수지 적자 문제는 생산성 향상 부진에 따른 경쟁력 약화에 원인을 두고 있기 때문에 쉽게 해결하기 어렵다.
따라서 브라질 헤알화 자산에 투자할 땐 통화가치 하락의 위험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물론 2000년대 중반이나 2022년처럼 원자재가격이 급등할 땐 헤알화 가치가 상승하고, 브라질 관련 채권이 큰 수익을 줄 수 있다. 그러나 투자자들이 적절한 타이밍을 잡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수많은 외교‧지정학 전문가 중에서 2022년 초 우크라이나 전쟁을 예상한 사람이 얼마나 있었는지 생각해 보라. 따라서 글로벌 투자를 고민할 때, 브라질 채권을 최우선 순위에 두기는 어려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