췌장은 몸속 깊은 곳에 있어 암을 조기 발견하기 어렵고, 예후(치료 경과)도 좋지 않다. 그런데 최근 국내 연구팀이 췌장암 치료에 쓰는 항암제의 조기 내성 발생 원리를 밝혀 주목받고 있다.
임가람·방승민(소화기내과)·강창무(간담췌외과) 세브란스병원 교수와 박종은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 교수 공동 연구팀은 췌장암 환자 17명의 수술 조직을 활용한 세포 전사체 분석 결과, 췌장암 항암제 내성이 생기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세포 타입을 확인했다.
췌장암은 대부분 약물로 치료한다. 환자의 90% 가까이가 수술을 받을 수 없을 정도로 암이 진행된 이후 췌장암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췌장암 5년 생존율은 15.9%에 불과하다.
보통 폴피리녹스‧젬시타빈‧파클리탁셀 등의 항암제 성분을 사용하지만, 평균 6개월이면 약물의 조기 내성이 생겨 치료에 어려움이 많은 상황이다.
그러나 조기 내성이 생기는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췌장암 세포 가운데 약물에 내성이 없는 세포는 사멸하고, 내성을 가진 세포만 살아남아 암을 진행시킨다는 ‘잔류 이론’과 췌장암 세포가 스스로 항암제에 내성을 가지게 진화한다는 ‘전이 이론’이 있지만, 두 이론 모두 연구를 통해 제시된 근거는 없는 상황이다.
연구팀은 세브란스병원에서 2019년 1월~2020년 7월 수술받은 췌장암 환자 17명의 수술 조직을 활용해 유전체 단위에서 면역‧종양 등 세포 변이 특성을 알아내는 단일 세포 전사체 분석을 진행해 췌장암 세포가 항암제에 내성이 생기는 과정을 조사‧분석했다.
그 결과, 항암제에 내성을 보이는 췌장암 세포는 항암 약물 처리 후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점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이러한 결과가 ‘전이 이론’의 근거를 확인한 것이라 평가했다.
또한 기존에 알려진 전이 이론 타입의 세포 외에도 서로 다른 생물학‧형태학적 특성을 가지고 항암제 내성을 일으키는 새로운 타입의 세포 종류 5가지를 밝혀냈다.
임가람 교수는 “췌장암에 항암제를 처리한 후 조기 내성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리를 밝혀낸 것에 의의가 있다”며 “연구를 이어가면 항암제 투여에 따른 저항성을 조기에 차단함으로써 췌장암 치료 성적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지놈 메디슨(Genome Medicine)’에 최근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