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외무성 본부와 재외 공관이 외교상 기밀을 주고받는 외교 전문(電文) 시스템이 중국의 사이버 공격을 받아 내용이 유출됐던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일본 정부는 미국이 알려 준 뒤에야 이런 상황을 파악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고 요미우리신문이 5일 보도했다.
요미우리는 복수의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 “2020년 여름 미국 정부가 ‘일본 재외공관의 네트워크가 중국에 노출돼 있다’고 일본 측에 알려줬다”고 보도했다. 당시 미국은 유출된 정보의 구체적인 내용이나 공격 사실을 어떻게 파악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베이징 소재 일본대사관과 일본의 외무성 본성 사이에 오간 외교 전문을 중국이 광범위하게 읽고 있다고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외교 전문'이란 외교를 담당하는 정부 부처와 해외 공관이 공식적인 지시와 보고를 주고받을 때 사용하는 전보를 말한다. 외교관이 외국 정부로부터 얻은 극비 정보 등 각종 기밀 사항을 포함하고 있어 특수 암호를 사용하고, 통상의 인터넷망과는 다른 폐쇄망을 활용한다. 요미우리는 “공문서 중에서도 특히 기밀이 요구되는 외교 전문 시스템이 뚫린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평했다. 다만 일본 외무성은 정보 보안을 이유로 요미우리의 사실 확인 요구를 거절했다.
2020년 당시 미국은 폴 나카소네 국가안보국(NSA) 국장이 직접 일본을 방문해 일본 정부 고위당국자와 회담하고 양국 실무자 협의도 갖는 등 발 빠르게 움직였다. 요미우리는 “NSA의 최고 간부가 직접 움직였다는 것은 미국이 그만큼 사태를 심각하게 여겼다는 뜻”이라며 미국이 일본에 주요 정부기관 시스템을 열어달라고 요구하기까지 했다고 전했다.
다만 일본 정부는 이에 난색을 표했고 자율 점검 후 결과를 공유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외무성 외에도 기밀 정보를 다루는 방위성, 경찰청, 공안조사청, 내각정보조사실 등 여러 기관의 시스템을 점검했고 취약한 프로그램을 개선하기로 미국과 합의했다.
당시는 아베 신조 정권 말기로, 중국의 부상에 따라 일본이 안보 전략을 수정하고 ‘적 기지 공격능력(반격 능력)’ 보유를 검토하기 시작했던 때다. 요미우리는 이런 배경을 언급하며 “중국이 외교 전문을 표적으로 삼은 것은 일본 정부 내 (안보 전략) 검토 상황과 미일 양국이 공유하는 중국 관련 기밀 정보를 빼내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추측했다.
앞서 지난해 8월 미국 워싱턴포스트도 2020년 말 일본 정부의 기밀 안보 정보망이 중국 해커의 공격을 받아 다량의 정보가 노출됐다고 보도한 적이 있다. 당시 일본 정부 대변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중국 해커의) 사이버 공격으로 방위성 기밀 정보가 유출됐다는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다”며 보도를 부인했다. 앞서 지난해 여름 일본 항공우주연구개발기구(JAXA) 메인 서버가 사이버 공격을 받았을 때도 중국의 개입이 있었다는 강한 의심이 제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