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미국이 중동 지역의 친이란 민병대를 공습했다는 TV 뉴스를 봤던 사람들은 적어도 한 번 이상, 군함 갑판에서 수직으로 솟구치며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미사일 발사 장면을 봤을 것이다. 걸프전이나 이라크전 등 미국이 해외에서 대규모 공습을 실시할 때 전투기나 폭격기보다 앞서 적진을 향해 날아가는 ‘토마호크’ 미사일의 발사 장면이다. 장거리 공격용 순항미사일의 대명사처럼 자리 잡은 토마호크 미사일은 등장한 지 반세기가 다 되어가지만, 지금도 미국의 첨단 군사과학기술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여전히 전쟁 관련 뉴스의 한 꼭지를 장식하곤 한다.
타국의 내륙 깊숙한 곳에 있는 핵심 시설을 정밀 타격할 때 사용하는 토마호크 미사일과 같은 순항미사일은 중동·아프리카 지역의 테러단체나 불법 무장조직을 공격하는 미군, 우크라이나 내륙 주요 도시들을 공격하는 러시아군과 같은 사례를 제외하면 다른 나라가 유사 무기를 사용하는 것을 보기 어렵다. 그래서 순항미사일은 마치 강대국의 전유물처럼 인식되는 경우가 많은데, 최근 ‘극빈국’ 북한이 이런 순항미사일 개발과 배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북한은 올해 들어서 공식 발표된 것만 4차례나 순항미사일을 발사했다. 지상 이동식 발사차량에서 쏜 '화살-2', 해상에서 발사한 '불화살-3-31'이 각각 두 차례씩 발사됐는데, 1월 28일 발사 실험에서는 김정은이 직접 현장을 참관하고 미사일이 날아가는 장면을 지켜보기도 했다. 북한은 두 미사일 모두 핵탄두 탑재가 가능하며, 2시간 이상 비행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반적인 순항미사일의 비행속도를 감안했을 때 2시간 이상 비행이 가능하다는 것은 1,000~1,500㎞ 이상의 사거리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미국의 토마호크나 러시아의 칼리브르 미사일, 우리나라의 최신형 현무-IIIC에 필적하는 수준의 성능이다. 그렇다면 이제 북한도 토마호크 미사일 수준의 순항미사일을 보유한 ‘군사강국’이 된 것일까?
북한이 개발한 미사일은 껍데기는 토마호크나 현무-IIIC를 흉내 낼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성능까지 유사할 수는 없다. 생긴 것은 비슷하지만 유도·비행 방식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토마호크나 현무-IIIC는 관성항법장치(INS)·위성항법장치(GPS)와 같은 일반적인 유도장치는 물론, 디지털 지형대조항법(DSMAC)이라는 최첨단 기술이 들어간다. DSMAC는 사전에 정찰기나 위성으로 촬영해 제작한 3차원 디지털 지도를 이용한 첨단 항법 기술이다. DSMAC 유도 방식의 미사일은 발사 전 미사일이 날아갈 경로 전체의 3차원 디지털 지도를 메모리에 저장한 뒤, 탑재된 전자광학 카메라가 촬영한 지형을 미리 저장한 데이터와 대조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며 비행한다. 이런 방식의 유도장치는 경로상 존재하는 모든 지형지물에 대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표면을 타고 넘듯 바짝 붙어 비행하는 초저공비행이 가능하다. 시속 900㎞의 속도로 지표면에서 30m 안팎의 높이에서 비행하는 토마호크는 계곡이나 빌딩 숲 사이에 숨어 표적에 접근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지상 기반 레이더로는 탐지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현재 기술적으로 DSMAC를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는 나라는 엄청난 숫자의 정찰위성과 정찰기를 굴리고 있는 미국뿐이다. 지금 이 순간도 세계 각지에서는 산을 깎아 댐을 만들고,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는 등 쉴 새 없이 지형 정보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이러한 변화를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며 최신 지형정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유지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뿐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한·미연합군 체제하에서 미국으로부터 최신 지형정보 데이터를 받아 현무-IIIC 등 미사일 항법장치용으로 쓸 수 있지만, 그럴 수 없는 북한은 DSMAC나 TERCOM 등 지형대조항법을 구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북한이 공개한 순항미사일 비행 사진들을 보면 대부분 지표면에서 한참 높은 고도, 그것도 바다 위나 해안 평야 지역과 같이 지형 굴곡이 거의 없는 곳에서만 날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형상은 토마호크를 흉내 냈을지 모르지만, 성능까지 모방하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토마호크와 같이 초저공비행 능력을 구현하지 못한다면 순항미사일은 그 생존성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순항미사일은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육안으로 식별이 가능하고, 일단 발견되면 보병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은 물론, 육안으로 조준하는 구형 수동식 대공포나 기관총에도 쉽게 격추된다. 경제난에 시달리는 북한 입장에서 같은 값이라면 격추될 가능성이 높은 순항미사일보다는 속도가 빨라 요격이 어려운 탄도미사일을 하나라도 더 찍어내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었을 텐데, 북한은 왜 구태여 순항미사일을 만든 것일까?
북한의 순항미사일은 사거리만 놓고 보면 일본이나 먼바다의 미군 전략자산을 노린 무기일 것 같지만, 사실 이 무기는 철저한 ‘한반도 전용’ 무기다. 북한 순항미사일은 조기경보기나 고성능 방공무기가 즐비한 일본이나 미 해군에게는 위협 자체가 되지 않는 형편없는 무기지만, 방공망 곳곳에 구멍이 나 있는 한국을 상대로는 매우 위협적인 무기이기 때문이다.
최근 우크라이나·중동 전쟁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현대전은 드론·미사일·로켓 등 다양한 유형의 공중 위협이 맹위를 떨치는 전쟁이 되어가고 있다. 드론만 하더라도 소형 FPV 드론과 중형 중·장거리 자폭 드론 등 그 유형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미사일 역시 탄도·순항미사일은 물론 극초음속 미사일과 편심탄도 미사일 등 비행 특성이 완전히 다른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이 때문에 각국은 다양한 유형의 공중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저고도부터 고고도까지 방공 시스템을 하나의 지휘통제 네트워크 안에 묶고, 대응해야 할 대상의 특성에 맞는 다양한 방공 시스템들을 구비해 여러 겹의 방공우산을 펼치는 다층·통합방공 시스템 구축을 서두르고 있다.
북한 역시 드론·순항미사일·탄도미사일·방사포 등 여러 종류의 발사체를 동시다발적으로 투사하는 하이브리드 화력전 준비에 여념이 없는데, 우리 군은 ‘위협 대처’보다는 ‘밥그릇 사수’에 혈안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제 방공작전의 키워드는 다층·통합방공이다. 육안으로 보이는 저고도 방공부터 우주에 속하는 고고도 방공까지 사거리·고도 공백 없이 촘촘한 방공이 가능하도록 다층방공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고, 동시에 여러 유형의 공중 발사체가 대량으로 날아오는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일원화된 지휘통제체계하에서 일사불란하게 표적을 식별·분배·지휘해주는 통합방공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 군은 지난 2022년 수도권 드론 침투 사건 때 드러난 바와 같이 저고도는 육군, 고고도는 공군이 맡는 식으로 역할을 나눠놨고, 각 역할 주체끼리 실시간 협조도 전혀 되지 않는다. 이런 황당한 상황은 순전히 ‘밥그릇’ 때문이다. 공백 없는 촘촘한 다층방공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저고도는 육군, 고고도는 공군’ 논리에 따라 과거에 세워놓은 중·장기 무기도입 계획을 전부 엎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이미 전역한 뒤 관련 기업에 취업해 한 자리씩 맡고 있는 ‘선배님’들의 심기를 건드려야 하는데, 이는 곧 현역 실무자들의 전역 후 재취업 기회가 날아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도 과거 계획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육군과 공군의 방공 임무를 통합해 단일 지휘체계를 만들면, 그 과정에서 날아갈 별 자리와 보직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대한민국 방공망은 막대한 혈세를 쏟아부어도 구멍이 송송 뚫려 있을 수밖에 없다. 2014년 청와대 상공을 뚫린 뒤 그 많은 돈을 쓰고도 8년 후 똑같은 위협에 또 뚫린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북한의 순항미사일은 바로 그 구멍을 노리고 만들어진 것이고, 유사시 그 구멍을 통해 들어와 우리 국민의 머리 위에 핵탄두를 박아 넣을 것이다. 유사시 서울 하늘에 버섯구름이 피어오르는 꼴을 보고 싶지 않다면, 국민의 혈세를 빨아먹으며 우리 방공망에 구멍을 내고 있는 우리 내부의 암세포들부터 서둘러 도려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