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활동에 어느 정도의 형벌 개입이 적당할까. 경제활동에 대한 형벌규정이 기업 범죄 억제에 효과가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개입 정도가 적정 수준을 넘어 지나치다면 생각해봐야 한다. 경제활동에 찬물을 끼얹어 기업경영을 위축하게 만드는 부작용이 크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경제활동에 대한 형벌의 개입은 민감하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떨까. 경제활동에 대한 형벌 개입 정도가 적정한가, 아니면 과잉 또는 과소 수준일까. 필자의 30년 공직 경험에 비추어볼 때 형벌규정은 꾸준히 증가해 왔다. 공무원들이 법 위반 억지력에 형벌규정이 좋다고 굳게 믿는 반면, 경제활동 위축 부작용에 대해서는 과소평가하기 때문이 아닐까. 법 위반 억지력에 형벌이 유용할 수는 있다. 하지만 행정목적 달성을 위해 손쉬운 형벌에 의존하는 행정편의주의 발상과 위법 예방에 형벌이 최고라 믿는 형벌만능주의 사고는 경계해야 한다.
기업인들은 매사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아슬아슬한 심정이라고 한다. 기업활동에 대한 형벌 개입이 지나치다는 의미일 것이다. 한국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형벌규정이 40%나 증가했다. 한국경제인협회의 발표에 따르면 16개 경제부처 소관 301개 경제법률의 6,568개 위반행위에 형벌규정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법률당 평균 22개의 형벌규정이 있는 셈이다. 형벌 공화국이라는 말이 단순한 엄살은 아닌 듯싶다. 세상만사 지나치면 부족함만 못하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정부는 2022년 8월 기업의 경영활동을 위축시키고 외국인 투자유치에 악영향을 끼치는 32개의 형벌규정을 개선하겠다고 발표했다. 2023년 3월에는 기업 활동을 가로막는 과도한 형벌규정 108개를 행정제재로 전환하겠다고도 발표했다. 형벌규정이 적합지 않거나 형벌이 과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형벌 적용이 적절치 않은 규정을 삭제하거나 과태료·과징금 등 행정제재로 우선 전환하고 보충적으로 형벌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이들 과제는 법률 개정사항으로 국회에서 조속히 처리해야 한다.
경제활동에 대해서는 시정명령·과징금·과태료·이행강제금 등의 행정질서벌로 우선 다스려야 한다. 사법당국에 고발하면 책임을 다했다고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행정형벌은 형벌의 일종이므로 형벌 일반원칙에 따라야 한다. 사전에 위반 여부를 알고서도 저지르거나 사전에는 몰랐으나 사후에 알고서도 용인해야 형벌로 처벌할 수 있다. 하지만 상당수의 경제법률 규정은 불명확하고 추상적이어서 합법과 위법의 경계가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다. 법 집행당국과 법원의 합리적 판단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위법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그런 경제활동에 대해서는 형벌 일반원칙에 따라 형벌규정을 둬서는 안 된다.
193개 유엔 회원국 중 130개 국가가 시장경제의 헌법인 경쟁법을 도입하여 운영하고 있다. 대부분의 선진국 경쟁법에는 형벌규정이 아예 없거나, 있더라도 가격담합·입찰담합 등 경성담합에만 형벌규정이 있다. 반면 우리 공정거래법은 지나치게 많은 형벌규정을 두고 있다. 글로벌해야 할 공정거래법에서조차 다른 선진국에 비해 형벌규정이 지나치게 많은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공정거래법을 비롯한 경제법률의 과다한 형벌규정은 글로벌 스탠다드에도 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