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면 대견한 거고 못하면 배우면 됩니다. 학교는 잘하라고 가는 데가 아니라 무엇을 배워야 할지 알고자 가는 곳이에요."
자녀가 처음 초등학교에 가는 일은 부모에게도 도전이다. 출발선에 선 아이를 보며 언제 이렇게 컸나 대견한 것도 잠시, 아직 어린 아이가 과연 학교 수업은 잘 따라갈지 친구들과 잘 지낼 수 있을지 의심과 불안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오죽하면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순간 부모도 1학년이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겠는가.
최근 출간된 '조선미의 초등생활 상담소'는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예비 초등학생 부모에게 필요한 자녀 교육의 원칙과 방법을 담은 책이다. 저자는 대한민국 부모들의 대표 멘토 조선미(62) 아주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그가 이번에는 자녀가 실패 없이 탄탄대로만 걸어가길 원하는 새내기 학부모들의 인지상정에 반론을 제기하며 '좌절'에 방점을 찍었다. "초등학교는 첫 좌절을 겪는 곳이에요. 제발 원 없이 좌절하게 해 주세요."
30년 넘게 현장에서 아이와 부모를 만나 온 조 교수는 부모들에게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현실 육아 멘토'로 유명하다. 1994년부터 심리 상담을 해 왔고, '60분 부모',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등 방송 프로그램에서 대중을 만났다. 지난해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요즘 양육 행태를 지적하는 뼈 있는 발언으로 반향을 일으켰다.
조 교수는 초등학교 입학은 부모에겐 양육 패러다임을 바꿔야 하는 '결정적 시기'라고 말한다. 특히 아이의 감정을 공감해 주는 '감정 읽기'로 아이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요즘 육아 트렌드는 초등학생을 둔 부모가 가장 먼저 버려야 할 키워드라고 강조한다. 세계적 가족 치료 전문가인 존 가트맨이 주창한 감정 읽기는 부모와 자녀 간 정서적 교감을 중시하는 교육법이다. 10여 년 전 국내에 들어와 육아의 '정답'처럼 자리 잡았지만 최근 과도한 감정 읽기로 훈육을 하지 못해 통제 불능의 아이들이 많아졌다는 지적이 나오는 터다. "요즘엔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같은 병증이나 발달 장애가 없는데도 교실에서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많아요. 감정 읽기와 훈육의 불균형이 원인이라고 봐요. 결국 부모가 그렇게 키운 셈이에요."
그는 30년간 무수한 임상 사례를 접하면서 양육 방식에도 시대정신이 있음을 알게 됐다고 한다. 그가 생각하기에 감정 읽기가 강조된 최근 10년간 가장 취약해진 건 '좌절 경험'이다. 그가 이번 책에서 초등학교에서 경험하는 첫 좌절을 돌아본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좌절 내구력'은 단지 하고 싶은 걸 참는 것만이 아니라 말과 행동을 때와 장소에 맞게 하고, 정해진 과제를 하며, 친구가 하고 싶은 건 함께할 수도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라며 "결국 학교에서 겪는 모든 경험 속에서 부족함을 인지하고 스스로 채울 수 있는 능력"이라고 설명했다.
아이 스스로 좌절을 극복하고 길을 찾는 것이 핵심이라면 부모는 도대체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조 교수는 툭하면 학교에 가기 싫다는 아이, 조금만 불편해도 힘들어하는 마음이 약한 아이, 사소한 불만도 참지 못하는 아이를 둔 부모가 안내자이자 훈육자로서 쓸 수 있는 구체적인 팁을 책에 남겨 놓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새내기 학부모의 중심을 잡아 주는 말을 남겼다. "인생의 시작점에 서 있는 아이에게 늘 신경을 쓰고 잘 돌봐야 한다는 조바심을 버려야 해요. 아이와 부모 사이에 틈이 있어야 지켜볼 수도, 리드할 수도 있거든요. 아이는 부모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유연하고 빨리 배운다는 점을 기억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