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피해자와 가족들이 처한 고통을 다룬 첫번째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범죄피해자 직접 지원금 연간 283억 원.
출소자들의 자활·갱생 지원 예산 연간 445억 원.
2006년 3월 범죄피해자들의 '일상회복' 권리를 명시한 범죄피해자보호법이 도입된 지 18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피해자 지원에 직접 투입되는 재원은 형기를 마치고 사회에 복귀하는 범죄자 지원금의 절반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4일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6개년(2018~2023년) 범죄피해자 지원 사업 세부계획안에 따르면, 지난해 범죄피해자 지원 주요 사업비 826억7,300만 원 중 피해자에게 직접 혜택이 주어지는 치료비, 생계비, 구조금, 신변보호사업에 283억6,900만 원(34.3%)이 책정됐다. 2018~2022년에도 직접 지원비는 200억 원대 수준(전체 기금의 26.8~34.9%)을 유지했다.
범죄피해자들을 돕는 돈은 범죄피해자보호기금에서 나온다. 기금은 특정한 목적을 위해 운용되는 자금인데, 일반 재정활동을 위해 책정되는 예산과 차이가 있다. 범죄피해자보호기금은 가해자들이 낸 벌금에서 8%를 떼어내 대부분 기금액을 충당한다. 올해 기금 총액은 1,370억5,400만 원이다.
하지만 기금 규모에 비해 피해자들에게 돌아가는 돈은 많지 않다. 범죄피해자 치료비와 생계비에 직접 쓰이는 건 35억300만 원이 전부다.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지급하는 구조금(救助金)은 총 100억1,500만 원이다. 범죄피해 현장 정리(4억900만 원), 간병비(5억800만 원), 법률 구조(4억1,200만 원) 등을 다 합치더라도, 피해자들이 체감하는 금전적 지원은 충분하지 않다. 기금액의 약 60%는 전국 60곳의 범죄피해자지원센터 혹은 심리상담을 맡는 스마일센터 운영, 성폭력피해자 지원 시설 운영 등 간접 지원에 쓰인다.
범죄피해자들을 위한 인색한 지원은 가해자들을 위해 국가가 베푸는 '선의'에 견주어볼 때 더욱 도드라진다. 법무부는 지난해 교정활동 예산(치료감호 및 소년원 운영비 제외) 4,961억6,500만 원 중 갱생보호활동(출소자의 사회복귀와 재범방지 활동)에만 445억1,900만 원을 배정했다.
올해는 4,473억800만 원 중 갱생보호에 473억7,000만 원을 배정했다.이 돈은 출소자 중 갱생보호대상자들의 사회복귀 지원기관인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과 8개 민간 갱생보호법인에 전액 지원된다. 갱생보호대상자란, 형사처분 또는 보호처분을 받은 사람 중 자립을 지원할 필요성이 인정되는 사람을 뜻한다. 정부는 이들의 취업 지원뿐 아니라 심리상담, 가족관계 회복까지 돕는다.
전체 사업비 중 국고보조금 비율은 90%. 국가가 부담하는 비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은 수준이다. 싱가포르는 갱생지원기관이 국고 보조 없이 전자제품조립, 식품생산, 의류생산 등 업무를 민간의 하도급 형태로 운영하며 자체 조달한다. 일본도 보조금은 70% 수준만 지원하고, 나머지는 기부금으로 채운다.
물론 전과자의 건전한 사회복귀를 도와 재범을 막는 것도 국가의 책임이고, 여기에 쓰는 예산도 안전한 사회를 위한 투자다. 하지만 범죄 피해를 당한 뒤 생계가 끊기고 신체·정신적 치료 비용을 장기간 부담하는 피해자들이 처한 상황을 고려할 때, 피해자 예산이 가해자 예산의 절반에 그친 것은 균형추가 잘못 맞춰진 게 아니냐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강력범죄 피해자인 A씨는 "범죄 재발을 막아야 하는 정부 입장은 이해한다"면서도 "형사사법 체계부터 사후지원 체계까지가 모두 가해자 위주로 기울어져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범죄피해자와 가족들이 조속히 원상회복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공격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한국피해자학회 부회장인 김지선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범죄피해자보호기금이 적진 않지만, 그중 피해자에게 오롯이 쓰이는 구조금은 기금의 10분의 1 수준"이라며 "피해자들을 위한 구조금의 파이부터 넓혀야 한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