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질질 끌던 비례대표 선거제 관련 입장을 이재명 대표에게 위임하기로 했다. 시간만 끌며 속내를 숨겨온 것도 심각한데 최근 예상된 ‘전당원 투표’ 실시 여부조차 오리무중이다. 국회 1당인 거대야당이 중요한 정치적 선택을 머뭇거리는 무능력과 무책임에 기가 찰 지경이다. 당 지도부는 그동안 ‘병립형 회귀’로 돌아선 모양새였지만, 의원 80여 명이 연동형 유지를 촉구하고 나선 뒤 침묵에 들어간 상황이다. 그러다 어제 고민정 최고위원이 “지도부가 결단을 내려야지 전당원 투표에 기대는 건 책임을 전가시키는 것”이라고 공개 비판하자 당대표에게 ‘포괄적 위임’키로 한 것이다.
민주당이 오락가락 행보를 보여온 이유는 명분론과 현실론이 맞서고 있어서다. 소수 의견 국회 진출 보장과 이 대표의 대선공약 이행을 위해 연동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쪽과, 총선 승리를 위해 병립형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견이 충돌하고 있다. 민주당은 난처한 사안마다 전당원 투표로 부담을 떠넘겨왔다. 이해찬 대표 시절 2020년 3월 위성정당 참여 여부를 전당원 투표로 손쉽게 미뤘다. 이낙연 대표 때인 2020년 11월에는 박원순·오거돈 전 서울·부산시장의 성비위로 생긴 보궐선거 공천 여부를 같은 방식으로 갈음했다. 이는 자당의 귀책사유로 생긴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겠다며 문재인 대표 시절 스스로 족쇄를 채운 진의조차 벗어던진 것이었다.
이런 비겁한 행태를 또 반복할 건가. 이번 경우 이 대표가 “멋지게 지면 무슨 소용이냐”고 언급해 사실상 지지층에 오더를 내렸고, 정청래 최고위원은 의원 단체 대화방에 병립형 회귀 필요성을 역설하며 당원투표를 제안했다. 정치적 유불리에 대한 판단이 바뀌자 ‘국민과의 약속’을 깨는 과정에 당원을 동원하려는 셈이다. 이 모두가 국민 신뢰를 까먹고 있음을 이 대표는 깨닫기 바란다. 찬반이 갈릴 때 어려운 결정을 내리라고 당대표가 있는 것이다. 그 역할을 꼼수로 피한다면 책임정치와는 거리가 멀다. 국민을 실망시키는 민주당 풍경이 참으로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