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래 녹음했지만 정당행위"… 주호민 아들 학대교사 벌금형 선고유예

입력
2024.02.01 18:00
"너 싫어" 등 불필요한 발언… 학대 인정
주호민 "현장 누 안되길" 제도개선 희망

웹툰 작가 주호민씨의 아들을 정서적으로 학대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특수교사에 대해 1심 법원이 유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최대 쟁점이었던 주씨 측 녹음파일의 증거능력을 인정했다.

수원지법 형사9단독 곽용헌 판사는 1일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및 장애인복지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A씨에 대해 벌금 200만 원의 선고를 유예했다. 선고유예는 가벼운 범죄에 대해 일정 기간 형의 선고를 미루고, 유예일로부터 2년이 지나면 면해주는 판결이다.

유죄가 나온 건 A씨의 학대정황이 담긴 녹음파일의 증거능력이 인정됐기 때문이다. 이 파일은 주씨 측이 A씨 모르게 아들 가방에 넣어 확보한 만큼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소지가 있었다. 최근 다른 사건에서 대법원은 자녀 가방에 몰래 넣어둔 녹음기로 녹음한 대화는 범죄 입증 증거로 쓸 수 없다고 판결하기도 했다. 폐쇄적 공간에서 교사와 학생 사이에 오간 ‘타인 간 대화’라 대화 당사자가 아닌 부모가 녹음하거나 녹음파일을 이용할 수 없다는 취지다.

곽 판사 역시 “이 사건 녹음파일도 통신비밀보호법이 규정하는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에 해당한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대화의 녹음행위에 위법성 조각 사유가 존재한다고 봤다. “폐쇄회로(CC)TV가 설치된 어린이집이나 방어 및 표현 능력이 있는 학생들의 수업이 이뤄진 교실과 달리 이 사건은 CCTV가 설치되지 않은 맞춤 학습실에서 소수의 장애 학생만 수업을 듣고 있었으므로 말로 이뤄지는 정서학대의 특성상 녹음 외 학대 정황을 확인하기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할 때 녹음행위는 정당행위로 인정된다”는 설명이었다. 비장애인에 비해 자신의 의사를 적절하게 표현하는 게 부족한 장애인의 특수성을 고려한 것이다.

정서학대와 관련해서는 피고인의 여러 발언 중 “버릇이 매우 고약하다. 너를 이야기하는 거야. 아휴 싫어. 싫어 죽겠어. 너 싫다고”라는 부분만 유죄 판단했다. 곽 판사는 “피고인은 특수교사로서 피해자 보호 의무가 있음에도 ‘너 싫어’ 등 불필요하고 부적절한 표현들을 사용함으로써 그 부정적 의미나 감정 상태가 피해자에게 전달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수업 중 일부 발언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정서적 학대로 인정될 뿐 전체 수업은 대체로 교육적 목적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보이는 점, 범행이 피해자의 정신건강 및 발달에 어느 정도 해를 끼쳤는지가 밝혀지지 않은 점, 피고인이 비교적 성실하게 근무하고 범죄전력이 없는 점 등을 참작해 선고를 유예하기로 했다”고 판시했다.

이날 법정에는 주씨도 참석했다. 담담한 표정으로 판결을 지켜본 그는 선고 후 심경을 묻는 취재진에게 “자기 자식이 학대당했음을 인정하는 판결이 부모로서는 반갑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열악한 현장에서 헌신하는 특수교사분들께 누가 되지 않길 바란다”며 “특수교사 선생님의 경우 업무 가중 스트레스가 있고 특수반도 과밀학급이라 제도적 미비함이 겹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된다. 여러 제도가 개선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A씨 변호인은 즉각 항소 방침을 밝혔다.

이종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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