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죽이는 SNS, 담배와 뭐가 다른가"... 미국 의회서 고개 숙인 SNS 수장들

입력
2024.02.01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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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규제 강화 관련 초당적 청문회 열려
집중 타깃 된 저커버그 "모든 일에 사과"


3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국회의사당. 딕 더빈 상원 법사위원장이 '빅테크와 온라인 아동 성착취 위기' 청문회의 시작을 알리자 장내 대형 화면에서 영상이 재생됐다. "나는 인스타그램에서 성착취를 당했다"라는 한 피해자의 고백으로 시작한 영상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성착취를 당하거나 집단적 괴롭힘을 당하거나 자해한 이들, 그리고 이 때문에 가족을 잃은 이들을 차례로 비췄다.

한 여성은 "어느 날 내 아들이 방에서 자살한 채로 발견됐다는 전화를 받았다"며 "당시 그 아이는 겨우 열세 살이었다"고 했다. 아들이 사망 전 성착취 피해를 당하고 돈을 뜯겼다고 그는 덧붙였다. 이어 "(피해가 발생한) 엑스(X·옛 트위터)에 연락을 취했다"며 "이후 그들은 '연락해줘서 감사합니다. 우리는 콘텐츠를 검토했지만 정책 위반이 발견되지 않아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기로 했습니다'라고 답해 왔다"고 했다. 얼굴을 모자이크로 가린 상태였지만 울먹이는 목소리가 그의 표정을 짐작게 했다.

영상이 끝난 뒤 공화당 린지 그레이엄 의원이 첫 질문자로 나섰다. 그는 청문회에 출석한 다섯 명의 SNS 업체 대표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럴 의도는 없었겠지만 당신들 손에 피를 묻혔습니다. 당신들에겐 사람들을 죽이는 제품이 있습니다." 방청석 한편에서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희생된 자녀 사진을 손에 든 수십 명의 부모들이었다.


저커버그, 사과했지만... 피해 인과성엔 침묵

이날 청문회는 SNS의 유해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적합한 규제를 모색하기 위해 민주·공화 양당 합의로 마련된 자리다. 메타·틱톡·엑스·스냅·디스코드 등 미국에서 가장 많이 이용되는 5대 SNS 플랫폼 업체 수장들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4시간 가까이 이어진 청문회에서 의원들은 플랫폼들이 콘텐츠 관리에 소홀하거나 방치한 탓에 이용자, 특히 어린이·청소년의 정신 건강이 위기를 맞았다고 강하게 질타했다. 일부는 SNS 업체가 담배 제조사와 다를 바가 없다고 지적했다. 최근 항공기 문짝이 떨어져 나가는 사고를 낸 보잉에 빗대 플랫폼에 더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에이미 클로버샤 민주당 의원)도 나왔다. 해당 사고는 아무런 상해를 일으키지 않았는데도 모든 동일 기종의 운항이 중단됐는데 SNS는 훨씬 큰 피해를 양산하고 있음에도 유의미한 조치가 없었다는 것이다.

청문회 집중 타깃은 메타를 이끄는 마크 저커버그였다. 메타는 2021년 '페이스북·인스타그램이 아이들에게 불안, 우울증, 자살 충동 등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숨기고, 오히려 조장해 왔다'는 내부 고발이 나오면서 규제 논의를 촉발시켰다. 미국 국립실종·착취아동센터에 따르면, 메타는 2022년에만 2,720만 건의 아동 성적 학대 의심 사건을 보고했다고 한다. 그해 미국에서 보고된 전체 사건(약 3,200만 건)의 약 85%가 메타 플랫폼에서 발생한 셈이다.

조시 홀리 공화당 의원은 "희생자 가족들이 여기에 있다. 사과할 의향이 있나"라고 물었다. 그러자 저커버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유족들을 향해 "여러분이 겪은 모든 일에 대해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다만 저커버그는 그들이 겪은 피해에 메타의 책임이 있다는 지적에 대해선 언급을 피했다. '피해자 가족에게 보상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답변하지 않았다.


SNS 책임 강화 법안, 연방 의회 문턱 넘을까

에드 마키 민주당 의원은 "저커버그의 사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이제 행동과 법이 필요하다"고 했다. 의회는 특히 1996년 제정된 통신품위법 230조 개정을 벼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 조항은 플랫폼 업체들이 콘텐츠의 내용에 대해선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때문에 업체들의 유해 콘텐츠 방치 명분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SNS 업체들에 더 엄중한 법적 책임을 지워야 한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실제 법안 통과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적 전망이 적잖다. 뉴욕타임스는 "메타 경영진은 2017년부터 SNS의 역할과 관련해 의회에서 33차례 증언했으나 여태껏 SNS 업체에 책임을 묻는 연방법은 통과되지 않았다"며 "테크업계의 로비와 세부 내용에 대한 당파적 논쟁 끝에 법안 수십 개가 부결됐다"고 했다.


실리콘밸리= 이서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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