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새해를 맞은 지 한 달이 지났다. 올해도 전례 없는 고물가와 생성형 AI의 출현 등 큰 폭의 변화가 예상된다. 대기업 마케팅 담당자와 자영업자, 심지어 트렌드를 선도하고 싶은 이른바 '인싸' 희망자들이라면 놓쳐서는 안 될 2024년 경제ㆍ사회ㆍ문화 트렌드의 최근 1개월을 짚어봤다.
‘초가속 시대’를 맞아 최근 사회는 시간 효율을 높이려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이제 가성비를 넘어 시간 대비 효율성을 의미하는 '시성비(時性比)'가 중요해진 것이다. '트렌드 코리아 2024'에서는 이를 '분초 사회'라고 명명했다.
분초 단위의 시간 관리가 중요해지면서 요즘 회사에서는 '오늘 8시 57분에 회의 시작하겠습니다'라고 알린다고 한다. 또 연차, 반차를 넘어 '반반차'같이 시간 쪼개 쓰기 휴가도 확산하고 있다. 이 모두가 시간 관리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수단이다.
시간을 아껴주는 솔루션도 인기다. 학원 등록, 명품 오픈런 등에 ‘대신 줄서기 알바’가 등장한 것이 대표적이다. 위키피디아에는 ‘줄서기 전문가’(Line stander)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대기 시간을 줄여주는 식당 줄서기 앱 '테이블링'이나, 병원 예약 앱 '똑닥'도 인기다. 영상 콘텐츠에서는 ‘배속 시청’이 일반화됐다. 1.2~1.5배속으로 빨리빨리 시청하는 것이 젊은 세대들에게는 일반화된 것이다. 그래서 OTT 서비스에서도 이제 빨리 감기 기능은 필수다. 이는 소유 경제에서 경험 경제로 소비 패러다임이 이동했기 때문이다. 경험 경제 시대에서는 돈보다 시간이 더 중요하다. 한 OTT 업체의 CEO는 "우리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는 인간의 수면시간이다"라고 역설했다. 그 정도로 기업에 시간 쟁탈전이 핵심 화두가 됐다.
하지만 반대로, 시간 지상주의 시대를 살면서 정작 스스로를 성찰하고 사색하는 시간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빠르고 자극적인 것에만 반응할 뿐, 느리게 바뀌는 진짜 현실에 무감각해지는 ‘팝콘 브레인’이란 부작용을 겪는 형국이다. 가속의 시대에도 여전히 여백이 필요한 이유다.
요즘 MZ세대 젊은이들에게 '고진감래' '자수성가' '개천에서 용 나는 흙수저 신화' 등의 성공 서사는 공감을 얻지 못한다. 오히려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완벽한(Effortlessly perfect) 육각형 인물을 선망한다. 육각형은 완벽함을 상징한다. 그래서 ‘육각형 인간’은 외모, 자산, 학력, 직업, 집안, 성격 등 모든 측면에서 완벽한 사람을 지칭한다.
이런 현상은 왜 나타나는 것일까? 가장 중요한 원인은 소셜미디어에서 사람들 간 과잉 비교 때문이다. 완벽한 모습을 보여줘야 인정받는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여기에 ‘노력 신화’도 붕괴되고 있다. 사회적 계층 사다리가 무너지면서 '노력해도 어렵다'는 생각이 확산한다. 심지어 ‘성공은 타고난 자산’으로 간주하는 경향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육각형 인간이 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불편한 현실 속에서 MZ세대는 오히려 육각형 인간이라는 잣대로 타인을 평가하고 서열화하는 것에서 묘한 쾌감을 느낀다. 아울러 ‘나도 육각형 인간이 돼야 한다’는 압박감도 점점 커진다. 최근 틱톡 등에서 ‘럭키걸 신드롬’(#luckygirlsyndrome)이 크게 유행한 것도 이 압박감을 이겨내기 위한 수단으로 풀이된다. 이렇듯 젊은이들이 ‘육각형 인간’을 추구하고 완벽함을 선망하는 이면에는 사회적 압박감과 좌절감이 함께 드리워져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밀레니얼 세대의 남편, 아빠들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 여성에게 집중됐던 가정 경영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새로운 남성상이 등장한 것이다. 퇴근 후 바로 육아에 매진했던 '6시 신데렐라'는 아내가 아닌, 남편을 지칭하는 용어가 됐다.
이미 결혼 준비부터 평등한 관계를 지향한다. 또 결혼 후에도 가사와 육아 문제를 남편과 아내가 동등하게 분담한다. 이를 ‘젠더 대수렴’(The Grand Gender Convergence)이라고 한다. 여성과 남성의 역할에서 차이는 사라지고 점점 평등해진다는 의미다.
실제로 ‘요즘 남편’은 아내와 함께 양육서를 읽고, 육아용품을 직접 고르며, 가사에 필요한 각종 가정용품을 적극적으로 탐색해 ‘장비빨’을 세운다. 공동육아를 위한 정부 차원의 지원과 복지혜택이 파격적으로 시행 중인 스웨덴의 경우에는 일명 '라테 파파'가 이미 일반화된 모습이다. 라테커피를 들고 유모차를 밀며 육아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아빠를 의미하는 단어로, 남녀 공동육아 문화를 상징하는 용어다.
사실 이런 변화는 남편과 아내가 일터와 가정을 넘나들며 멀티플레이어가 돼야 하는 슬픈 현실에서 기인한다. 그래서 이런 젊은 부부들의 고단한 현실을 깊이 이해해야 한다. 젊은이들이 더 쉽게 결혼하고 자녀를 낳아 기를 수 있도록 사회적 지원과 정책적 실행이 절실한 이유다.
코로나 이후 ‘지역’에 대한 고민이 커지고 있다.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고 힘을 잃어가는 지역에 어떻게 역동성을 불어넣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유연한 시각’이다. 사람들이 정주(定住)하는 ‘고정된 지역’이란 개념에서 벗어나,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러지는 ‘유연한 지역’으로 변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인구 개념부터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전통적 의미에서 인구란, 일정한 지역 안에 살면서 주민등록법에 따라 주민으로 등록한 사람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제는 ‘생활 인구’가 지역에 역동성을 불어넣는 해법이 될 수 있다. 통근, 통학, 관광, 휴양, 업무, 정기 교류 등 우리 지역을 방문해 일시적으로 생활하거나 체류하는 사람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최근 MZ세대에게 서핑의 성지가 된 강원도 양양의 경우, 정주 인구는 2만7,700명 정도지만 관광객 등을 포함한 생활 인구는 무려 3배에 가까운 7만5,300명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과거에는 지역을 대표하는 특산품이나 명승지가 관광객 유치에 효과적이었지만, 요즘에는 개성 있는 ‘시그니처 스토어’가 이를 대체하고 있다. 실제로 양양이 서핑 성지로 거듭난 것은 서핑 전문 해변 '서피 비치'(Surfyy Beach)라는 핫플레이스가 생기면서부터다. 또 경북 칠곡군 왜관에는 'ㅁㅁㅎㅅ' 햄버거 집이 생기면서 연간 8만 명이 방문하는 등 왜관의 생활 인구가 크게 늘었다. 이밖에 서울 광장시장의 '365일장'은 시장 문화를 재조명하는 아이템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고, 제주 '아라리오뮤지엄 탑동 시네마'는 쇠락해가던 원도심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제주도의 LA로 불린다.
이렇듯 지역에는 각자 다른 매력을 뿜어내는 다양성이 있다. 이런 다양함에 트렌디한 감성과 창의성을 과감하게 담아낼 유연함과 역동성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나라 인구 구조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1인 가구가 급격하게 늘고, 초고령화 속도는 빨라졌다. 이런 개인화ㆍ원자화되는 사회에서 ‘돌봄’은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형성할 정도로 강조되고 있다.
기존의 돌봄 활동이란, 노인이나 장애인, 영유아 등 노약자의 신체적 어려움을 챙겨주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들의 마음까지 세심하게 배려하는 정서적 차원의 의미가 더욱 커지고 있다. 실제로 한국의 우울증 유병률과 자살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만큼 청소년부터 고령자에 이르기까지 전 연령대에 걸쳐 마음 돌봄이 더욱 중요해지는 것이다. 특히 1인 가구가 많아질수록 외로움 등 정서적 어려움을 풀기 위한 해결책이 절실하다. 이를 위해 직접 대면하는 방법도 있지만, 비대면 언택트 서비스로 돌봄을 연결하는 디지털 플랫폼이 적극 활용되기도 한다.
인공지능을 탑재한 반려 로봇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한 접근법도 있다. 감정 케어, 음성 비서 등을 활용, 이용자의 대화 내용을 분석해 정신 건강에 위험 신호가 감지되면 관련 기관과 연계해 심리 상담 등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돌봄 활동은 개인-개인 간에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기관과 기업도 적극적으로 돌봄에 나선다. 예를 들어, 매일유업은 ‘우유 안부 캠페인’을 펼쳐 눈길을 끌었다. 매일 독거노인들에게 우유를 배달하면서 일신상의 문제가 없는지 꼼꼼하게 챙기는 활동이다. 편의점도 일종의 돌봄 플랫폼 역할을 한다. 미아를 찾아주거나 경찰서와 연계해 범죄 예방 활동을 하고 있다.
돌봄의 영향력은 연쇄적이다. 사회 지속성을 담보할 좋은 수단이며, 사회 전체의 견고함을 강화하는 훌륭한 밑거름이 된다.
이준영 상명대 경제금융학부 교수·트렌드코리아 공저자
서울대 소비자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상명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현재 한국소비문화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2017년 한국소비자학회 최우수논문상을 수상했으며, 저서로는 '트렌드코리아 2010~2024' 시리즈(공저), '1코노미', '코로나가 시장을 바꾼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