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키 작가는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이 들리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구매하게 되는 작가 중 하나다. 첫 책 ‘나-안 괜찮아’를 처음 봤을 때 이국적인 그림체와 날카로운 관점, 촌철살인의 유머에 적잖이 놀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후 만화 에세이 ‘하하 하이고’와 단편집 ‘그럼에도 여기에서’까지, 실키는 녹록하지 않은 삶을 사는 독자들에게 공감과 웃음과 위로를 전하며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이번에는 7년째 프랑스에 거주 중인 아시아 여성의 경험을 만화로 풀어냈다. 전작들이 허구와 경험을 적절히 섞은 작품이었다면 신작 ‘김치바게트’는 작가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허심탄회하게 드러낸 일상툰이다. 키워드를 뽑는다면 ‘차이’와 ‘차별’.
먼저, 프랑스인 파트너 막스와 함께 살면서 수시로 맞닥뜨리게 되는 문화 차이를 섬세하게 짚고 토론한다. 주제는 아침 식사 메뉴부터 인사법, 행정, 음식, 섹스, 선거 제도, 임신 중지, 장례 등 다양하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랐기에 차이는 있을 수밖에 없다. 그 차이를 오해하지 않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두 사람의 대화는 재미있으면서도 귀감이 된다.
두 번째 키워드는 ‘차별’이다. 작가는 “아시아인 대상 인종차별은 없다”고, “과민반응”일 뿐이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인종차별은 존재한다’는 걸 알리고 싶어서 이 작품을 시작했다. 뜨겁게 분노하고 고발하기보다는 담담하고 유머러스하게 그렸는데, 차별은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너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걸 말하기 위해서다. 차별은 일상에 먼지처럼 존재한다. 관심이나 칭찬, 농담이랍시고 가볍게 던진 말이 사실은 아시아인에 대한 선입견이자 고정관념이자 차별이라는 걸 실키 작가는 웃으면서 지적한다. “응, 그거 차별 맞음.”
그림체의 변화는 이런 허허실실 전략의 일환일까. 굵고 거칠어 깊이감이 돋보였던 흑백 그림 대신 선택한 귀엽고 컬러풀한 만화체는 편안하고 친근하다. 27개 에피소드마다 각기 다른, 매력이 철철 넘치는 제목 그림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한국 작품이 해외로 번역, 수출된 사례가 아니라 프랑스에서 먼저 발표됐다는 점도 새롭다. 다르고 출판사의 웹 매거진 마탕!(Matin!)에 연재한 내용을 책으로 묶어 프랑스 전역에 출간했다. “편견을 바로잡고 두 나라 사이의 차이를 더 잘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책”이라는 현지 미디어의 호평을 받았다. 웹툰이 연재되는 동안 프랑스 독자들은 댓글을 통해 작가에게 응원과 감사의 메시지를 보내고, 차별에 관한 자신의 경험을 나누는 한편 독자들끼리 서로 질문하고 대화하는 장을 만들기도 했다. 차이와 차별을 터놓고 이야기함으로써 우정과 연대의 장으로 나아가게 하려는 작가의 시도는 성공한 것 같다. 이제 우리가 더 많이 읽고 함께 이야기 나눌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