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인지 몰랐다.” “아직 준비가 안 됐다.”
지난 27일 근로자 수 50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된 중대재해법을 두고 소상공인들이 내는 목소리다. 30일 한국일보 취재에 응한 산업안전 분야 전문가들은 ‘정부의 홍보ㆍ의지ㆍ준비 부족 탓에 중대재해법 준비를 위한 골든타임을 흘려보낸 결과’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근로자의 생명 보호’라는 입법 취지를 달성하기 위해 적극적인 인력ㆍ시설 투자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중대재해법은 2021년 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2022년 1월부터 대기업에 적용됐다. 중소기업은 준비 부족을 이유로 올해 1월 27일 시행됐다. 3년간의 준비 시간이 있었지만 정부ㆍ여당은 법 적용 한 달을 앞둔 지난해 12월 27일에야 갑작스럽게 ‘2년 추가 유예’를 야당에 요청했다. 고용부는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중소기업의 다양한 상황ㆍ수요를 맞추기에는 한계가 있었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최선을 다했는지에 의문을 제기했다. 강태선 서울사이버대 안전관리학과 교수는 “고용부가 최소한 중대재해법 확대 적용을 전담하는 태스크포스(TF)라도 만들고 중소기업에 제도를 알리려는 노력을 했어야 한다”며 “제도를 모니터링하며 어떻게 법을 효율적으로 확대 적용시킬지 고민하는 노력, 노동조합 및 중소기업계와 소통하며 현장을 준비시키려는 노력이 모두 부족했다”고 했다.
정부가 내심 법 유예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김관우 율촌 중대재해센터 수석전문위원은 “정부는 지난해 12월 27일에 중소기업 중대재해법 지원대책을 발표했는데 2년 전에 발표했어야 하는 대책”이라며 “정부가 미리 법 확대 적용을 준비했더라면 지금 같은 혼란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기업 현장을 다독여야 할 정부가 오히려 불안감을 부추겼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지난 24일 중대재해법 추가 유예를 주장하며 “동네 음식점이나 빵집 사장님도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산업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음식점ㆍ빵집 등을 포함한 음식점업에서 발생한 사망자는 2018년 2건, 2019년 2건, 2020년 1건으로 극소수다.
정부의 의지 부족은 중소기업 준비 부족으로 나타났다. 고용부가 한 차례라도 중대재해법 준비를 도와준 중소기업은 45만 개로 전체(83만 개)의 54%에 불과하다. 구체적으로 △사업장을 한두 차례 방문해 위험요인 개선 지도(36만 개 진행)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을 위한 교육(7만8,000개 진행) 등이다. 가장 기초적인 ‘위험요인 개선 지도’조차 마무리하지 못한 것이다.
정부가 지난달 내놓은 ‘중대재해 취약분야 기업 지원대책’도 도마에 올랐다. 대책 가운데 △산업안전 대진단 △기업 컨설팅 및 교육ㆍ기술지도 등은 “이미 해오던 재탕 정책”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중소기업계가 강력하게 요구한 ‘공동안전관리자 채용 지원’이 추가됐지만 전문가 600명분 예산에 그쳤다. 사망 등 중대재해 사망사고가 집중(79%)되는 제조업ㆍ건설업 분야 중소기업만 25만 개다.
전문가들은 실효성 있는 지원을 요구했다. 전형배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산업안전 분야의 선진국인 독일이나 일본은 정부가 기업 안전시설 강화에 재정을 대폭 투입해 사망자를 크게 줄였다”며 “중대재해법을 흔들림 없이 시행하며 시설ㆍ장비 예산 지원을 과감하게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김 전문위원은 “중소기업이 필요로 하는 공동안전관리자 선임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며 “만약 법을 유예하려면 ‘위험성평가’ 등 중대재해법의 필수 조항만 우선 적용하는 방안이 절충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